서울, 표준어 욕의 탄생과 무표정의 권력

by 은파랑




서울, 표준어 욕의 탄생과 무표정의 권력


서울의 욕은 이상하리만큼 깔끔하다.

거칠게 뱉었지만 발음은 정확하고 억양은 평평하다.

이상하게도 그 욕은 사투리의 날을 벼리지 않고도 사람을 베어낸다.


지방의 욕이 감정을 끌어안고 휘몰아친다면

서울의 욕은 감정을 눌러 담고 말끝을 자른다.

그래서 더 서늘하다. 더 세다.

서울의 욕은 ‘표준어 욕’이다. 힘 있는 욕이다.


표준어는 언제나 권력이었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전쟁을 딛고 일어선 서울은 ‘수도’가 되었고 수도에서 쓰이는 말은 ‘표준’이 되었다.

언어학적으로도 표준어는 가장 ‘많이 쓰이는 말’이 아니라

‘힘 있는 곳에서 쓰는 말’이었다.

서울 말은 권력이었고 서울 욕은 권력의 변종이었다.


서울 욕은 억양이 없다.

“아 진짜 열받네.”라고 말하면서도 얼굴은 무표정하다.

‘씨 X’이라 말하면서도 눈은 가만히 떠 있다.

여기서 나타나는 건 무표정의 권력이다.


사회학자 고프먼은 일상의 ‘표정 관리’가

타인에게 주는 인상, 나아가 지배 구조를 만든다고 했다.

서울의 무표정은 타인을 눌러버리는 힘이다.

분노도 사랑도 기쁨도 슬픔도

수평선 위에 눕혀두는 감정의 기술

그것이 서울이 택한 자기 방어의 방식이다.


심리학적으로 무표정은 감정 노동의 결과다.

‘괜찮은 척’ 해야 하는 도시

지하철에서 밀쳐도 아무 일 없다는 듯 내려야 하는 도시

분노조차 정제된 언어로 흘려보내야 살아남는 곳

이런 환경에서는 욕마저도 정제된다.

욕을 하되 얼굴은 일그러지지 않는다.

서울은 그런 도시다.


과학자들은 이야기한다.

인간은 감정을 얼굴 근육으로 표현하는 유일한 종이지만

반복된 억제는 근육을 마비시킨다.

서울의 얼굴에는 피로가 없다.

하지만 그건 쉼이 아니라 마비다.


서울의 욕은 그래서 슬프다.

표준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그 말은 감정을 품기보다 감정을 단절한다.

그러나 단절은 생존을 위한 선택이다.

무표정과 욕 사이에서 서울 사람들은 간신히 자기 마음을 지킨다.


서울

그곳은 말끝을 눌러 삼키는 도시다.

감정을 말로 바꾸되 감정은 표정에 담지 않는다.

서울의 표준어 욕과 무표정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상처를 말하고

또 상처를 감춘다.


은파랑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서울, 욕은 하되 예의는 차리는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