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모순을 품고 걷는 도시다.
좁디좁은 지하철 안에서 "좀 비켜보세요"라는 말은 욕설보다 더 날카롭게 꽂히고
길가에선 서로 욕을 퍼붓다가도 식당에 들어서면 “물은 셀프예요”란 말에 모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서울은 욕을 하되 예의를 차린다. 이 도시의 인사는 때로 “X나 추워”로 시작되지만 그 뒤엔 “감기 조심해”가 따라온다.
삶이 거칠어도 마음은 다정한 서울은 그런 도시다.
역사적으로 서울은 늘 권력과 통제의 중심이었다. 조선 시대엔 사대문 안에선 양반의 말과 몸짓이 법이었고 일제강점기엔 억눌린 자들이 혀끝으로 저항했다. 그 언어의 유산은 지금도 이어져 우리는 직설과 은유 사이에서 욕을 하나의 방언처럼 구사한다.
프랑스 철학자 바슐라르는 “공간은 기억의 그릇”이라 했다. 서울의 욕설엔 억눌린 감정, 참아낸 날들, 말로 못한 상처가 담긴다.
심리학자 융은 무의식이 언어를 통해 발현된다고 말한다. 서울 사람의 욕은 분노의 표출이 아니다. 불안정한 정체성, 사회적 압력, 관계 속 거리 두기의 기술이 그 안에 녹아 있다. 오히려 욕은 방패에 가깝다. 너무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는 신호, 그러나 완전히 외면하지는 않겠다는 메시지다. ‘개’로 시작되지만 ‘야’로 끝나며 여전히 관계를 유지한다.
인문학적으로 본다면 서울의 예의는 일종의 의식이다. 푸코는 예절을 통치의 한 방식이라 봤다. 서울 사람들은 피곤한 하루 끝에도 ‘감사합니다’를 잊지 않는다. 이는 타인을 위한 말이라기보다 자신을 지키는 마지막 방어선이다. 욕설 뒤에 덧붙이는 “죄송합니다”는 말은 진심이자 생존 방식이다. 사회학자 고프먼의 말처럼 우리는 매일 무대 위에 서 있으며 서울의 무대는 빠르고 복잡하다. 욕도, 예의도 모두 연기의 일부다.
과학적으로도 이는 흥미롭다.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욕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통증을 줄여준다. 서울이라는 고압의 환경 속에서 욕은 일종의 생리적 적응이다. 하지만 욕만 있다면 사회는 붕괴한다. 그래서 우리는 예의를 곁들인다. 공공장소에서 전화할 때는 입을 손으로 가리고 무례한 상황에서도 “죄송하지만”으로 운을 뗀다. 욕은 감정의 출구, 예의는 관계의 입구다.
서울은 거칠지만 따뜻하고 빠르지만 느려지기도 한다.
이 도시의 말은 모순되고 진심이며 상처받았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람들의 소리다.
서울은 욕을 하되 예의를 차리는 도시다.
그리고 언어의 균형 위에서 하루하루를 간신히 살아낸다.
은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