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nparang
“내가 사랑이 무엇인지 안다면 그건 당신 때문이에요.”
헤르만 헤세의 말씀이다.
사랑이란 언제나 곁에 있었지만 정작 그것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사전 속 정의로는 설명되지 않고 철학자의 긴 문장으로도 붙잡히지 않는다. 사랑은 홀로 있을 때는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다. 그것은 언제나 타인의 얼굴을 통해 불쑥 다가온다.
헤세의 고백은 그래서 맑고도 단호하다. 나는 사랑을 알게 되었으나 그것은 내가 훌륭해서도, 세상 경험이 많아서도 아니다. 오직 당신 때문이라는 고백. 사랑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너’라는 구체적인 이름이며 그 순간 사랑은 세계를 다시 쓰는 언어가 된다.
1812년, 베토벤은 편지를 썼다. “나의 모든 것, 나의 전부, 나의 불멸의 연인.”
그는 수신자의 이름을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익명 속에야말로 사랑의 본질이 숨어 있다. 그에게 사랑은 특정한 인물이면서 동시에 영원한 존재였다.
그가 작곡한 교향곡 9번을 떠올려보자. 인간의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끌어안은 음악 속에는 사실 한 사람을 향한 고백이 흐른다. 사랑을 알게 되었기에 그는 음악의 심연을 열 수 있었고 사랑이 있었기에 그의 선율은 지금도 불멸을 노래한다. 베토벤에게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삶의 근거였던 것이다.
문학의 거장 위고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배우 쥘리엣 드루에와 반세기를 함께하며 2만 통이 넘는 편지를 주고받았다. 매일 밤 그녀는 한 장의 편지를 썼고 위고는 그것을 읽으며 다음 날의 문장을 이어갔다.
'레미제라블' 속 인간에 대한 연민과 구원, '노트르담 드 파리'의 고통과 열정. 거대한 서사의 밑바닥에는 쥘리엣이라는 이름 없는 불씨가 있었다. 세상을 향해 외치는 듯한 위고의 문장들은 사실 그녀에게 닿기 위한 속삭임이었다. 문학이 영원을 겨냥했다면 영원의 근원은 사랑이었다.
위대한 예술가들의 삶은 한 가지 사실을 증언한다. 사랑은 개인적 감정에 머물지 않고 인간의 영혼 전체를 변화시킨다. 베토벤이 음표로 불멸을 건네줄 수 있었던 것도, 위고가 문장으로 세상을 흔들 수 있었던 것도 결국 그들 곁의 누군가 덕분이었다.
사랑이란 ‘내가 알게 된 것’이 아니라 ‘당신을 통해 내게 도달한 것’이다. 그렇기에 사랑은 언제나 이름을 가진다. 불멸의 연인, 쥘리엣 그리고 우리 곁의 소중한 한 사람
그리고 그 순간, 헤세처럼 고백할 수밖에 없다.
“내가 사랑이 무엇인지 안다면 그것은 당신 때문이다.”
은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