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감염의 문턱

eunparang

by 은파랑




사랑, 감염의 문턱


“사랑은 바이러스와 같다.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마야 안젤루의 어록이다.


증상 이전이 가장 조용하다.

아무 일도 없는 듯 일과가 흐르는데

한 문장이 몸속에서 천천히 복제된다.


사랑은 공기의 전염이 아니라 주의의 전염이다.

우리가 오래 머무는 시선이 우리를 바꾼다.


리셉터는 단순하다.

나의 결핍과 너의 풍부함이 정확히 맞물릴 때

접합은 시작된다.


면역은 대개 뒤늦다.

일정표와 냉소로 방역을 치지만

변이는 빈칸으로 들어온다.


격리는 실패한다.

휴대전화는 묵음으로도 울리고

지운 이름은 또다시 저장된다.


사랑은 현재만 오지 않는다.

과거의 퇴적을 통과해 도착하고

미래의 예감을 약간 앞당긴다.


문학은 변이의 기록지

시는 급성, 소설은 만성

수필은 두 사이의 호흡을 담당한다.


한 번 아픈 자리엔 항체가 남지만

완벽한 방어는 아니다.

다음 사랑은 다른 각도로 스며든다.


결국 사랑은 우리를 ‘나’에서 ‘문장’으로 바꾼다.

혼자였던 서술이 복수의 호흡을 얻는다.

뜻은 겹겹이 깊어지고 삶은 읽힐 만해진다.


그래서 마음의 표면을 닦아두되

한 자리는 비워 둔다.

언제든, 누구에게나 사랑은 일어날 수 있으므로


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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