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개의 정보 조각을 마주한다. 스크롤 한 번에 짧은 글, 영상, 이미지, 뉴스가 끝없이 흘러들어온다. 표면적으로는 더 많이 알고 있는 시대 같지만, 이상하게도 우리는 덜 생각하는 인간이 되어간다. 정보가 넘칠수록 사고는 깊어지지 않고 오히려 얕아진다.
이유는 단순하다. 뇌가 감당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보가 늘어나면 생각이 풍성해질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처리 가능한 인지 자원이 너무 빠르게 고갈된다. 뇌는 복잡한 문제를 깊게 파고드는 것보다 즉각 반응할 수 있는 자극을 선호한다. 피드는 그런 선호를 정확히 겨냥한다.
문제는 이런 정보가 대부분 얕게 소비되도록 설계된 콘텐츠라는 점이다. 짧은 영상, 한 줄 요약, 자극적인 이미지, 감정적 문장들.
우리는 이런 조각들을 빠르게 넘기며 깊은 사고가 요구되는 지점에 도달하기도 전에 다음 자극으로 이동한다. 생각이 자라기도 전에 잘려나가는 구조다.
결과 뇌는 점점 ‘지식의 축적’보다 ‘반응의 습관’에 익숙해진다.
기억은 피상적으로 남고 사고는 연결되지 않는다.
문제를 오래 붙잡고 있을 힘, 맥락을 복원하는 능력, 의미를 구성하는 과정이 모두 약해진다.
정보의 양이 아니라 맥락의 상실이 사고력을 무너뜨린다.
더 깊은 문제는 이런 피상적 정보 소비가 자기 판단력을 약화시킨다는 점이다.
타인의 정리된 의견에 노출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자기 언어로 생각하기보다 남의 결론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생각의 과정이 줄어들면 판단의 근육도 퇴화한다.
그때 인간은 생각하는 주체가 아니라 반응하는 소비자가 된다.
정보의 홍수는 결국 사고의 기근을 낳는다.
표면적으로는 풍요로워 보이지만 본질은 영양결핍 상태와 닮아 있다.
정보는 넘치는데 사유의 토양은 메말라 있다.
깊이 생각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니다.
오히려 정보의 간격, 정보 사이의 침묵 그리고 멈춤의 시간이다.
사고는 정보가 흐르는 동안이 아니라 정보가 멈추는 공간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식을 소화할 여유다.
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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