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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 Feb 05. 2019

유럽에서 ‘백수’인 채로 스물여덟을 맞이하는 기분이란

리스본에서 새해를

리스본은 활기찬 도시다. 흐린 날보다 쨍쨍한 날이 더 많고, 비교적 춥지 않은 겨울 날씨라 그런가. 12월 31일의 리스본은 거리마다 사람들로 가득 찼다. 원래 세상의 제일 서쪽 끝이라는 신트라의 호미곶에 가서 2018년의 마지막 일몰을 볼 예정이었지만 마지막 날이라 교통수단을 일찍 운영 종료한다는 말에 그냥 리스본을 찬찬히 둘러보기로 했다. 




여행을 계획할 때엔 잘 몰랐는데, 리스본의 코메르시우 광장에서 열리는 새해맞이 파티가 꽤나 규모도 크고 세계에서 어느 정도 알아주는 행사라고 하더라. 그래서인지 이곳에서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이 도시를 찾아온 관광객들이 유난히 많았나 보다. 낮에 가본 광장에선 공연 리허설이 한창이었다. 광장은 생각보다 크고 사람이 많았다. 





광장 바로 앞에는 타구스강이 흐르는데, 그 앞엔 신전 기둥 같은 무언가가 세워져 있다. 강물이 대서양으로 흐르는 이곳은 드라마 ‘도깨비’에서 본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강에서 햇빛을 쐬며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 그리고 그 앞에서 버스킹을 하는 한 밴드가 있었다. Coldplay, The Chainsmokers 같은 유명한 뮤지션들의 커버곡을 연주하던 밴드는 그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의 여유로움에 완벽한 배경음악을 선사했다. 눈앞에 펼쳐진 이국적인 풍경과 따사로운 날씨의 12월 31일이라니. 새삼 감격스러웠다. 





왜인지 모르게 매년 12월 31일이 되면 묘한 설렘과 함께 하루를 보냈다. 사실 날짜가 바뀌고,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것뿐 (물론 이것도 한국식 나이 셈법에 의해서지만) 세상이 변하거나 내 주변이 바뀌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지도 않는데 괜히 무언가 크게 바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번 12월 31일은 조금 달랐다. 이미 크게 바뀐 환경에 내가 있었기 때문인지 하루 만에 큰 변화가 생기길 바라는 바람이 생기지 않았다. 애초에 끝말잇기에서나 접하던 리스본이라는 도시에서 ‘백수’의 신분으로 새해를 맞이한다는 것 자체가 꿈같은 일이니까! 회사에 사표를 내고,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프라하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시간이 될 때마다 여행을 다니는 삶을 살게 되다니! (물론 6개월의 시간제한이 있긴 하지만) 그만큼 2018년은 내게 큰 용기가 필요했던 일들이 가득했던 한 해였다. 새삼 뒤도 안 돌아보고 용기를 냈던 내가 참 웃기기도 하다. 





12월 31일 밤 11시.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은 2018년과 작별하기 위해 코메르시우 광장으로 나섰다. 광장은 이미 새해 카운트다운을 보러 온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다른 나라 사람들 사이에 둘러 쌓여 포르투갈 가수들의 새해 공연을 관람했다. 이윽고 11시 59분. 포르투갈어로 시작된 카운트다운. 눈치껏 10부터 1까지 세겠거니 하며 나는 한국어로 카운트다운을 했다. 10, 9, 8, 7, 6, 5, 4, 3, 2, 1. 사람들은 함께 손뼉 치며 해피 뉴 이어를 외쳤다. 하늘 가득 수놓아진 형형색색의 불꽃들. 이와 함께 흘러나오는 Queen의 명곡들. 지금까지 본 불꽃놀이 중 가장 감동적인 불꽃놀이었다. 알고 보니 리스본의 새해맞이 파티가 유명한 이유가 바로 이 불꽃놀이 때문이라고 한다. 





나의 스물일곱이 저물고 스물여덟이 찾아왔다. 


진정한 20대 후반의 나이가 되었다. 나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신분인 채로 그렇게 스물여덟을 맞이했다. 대신 평생 좋아하던 일인 글쓰기를 마음껏 하고, 세상 이곳저곳을 쏘다닐 계획에 그 어느 때보다 설레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세상을 탐험하며 잃었던 마음의 여유를 되찾고, 내가 신나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도 함께 찾으려고 한다. 그 속에서 보내는 일 년은 인생에서 돌아봤을 때 고작 한 해일뿐인데, 80살까지 산다는 가정하에 지금 내가 보내는 일 년은 80분의 1. 즉 1.25%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면 굳이 조급해할 필요 없지 않을까? 1.25%의 시간을 가지고 남은 인생의 125%를 채울 수 있는 무언가를 배워간다면 잠깐 멈춰 서서 세상을 바라보는 순간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쉼표를 제대로 즐기기

앞으로 유럽에서 보낼 반년 동안 남은 인생의 125%를 채울 수 있는 그 무언가를 놓치지 않고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 갈 수 있기를. 조금 더 현명하고 지혜로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사소한 것에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이 여유를 잃지 않기를. 한국에 돌아가기 전 꼭 이뤄보자고 한번 적어본다. 1월엔 원래 다짐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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