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이곳은 아프리카입니다.
리스본에서 감동적인 새해를 맞이하고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모로코로 넘어갔다. 모로코는 북아프리카에 위치한 나라로 유럽과 굉장히 가까이 있어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을 여행하는 여행객들이 함께 묶어 많이 방문한다.
모로코에 간다고 하면 모든 사람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는데 ‘정말, 정말 조심해!’. 그만큼 모로코는 여자 혼자 다니면 캣 콜링 (지나가는 여성에게 하는 남성의 휘파람 소리 또는 성적인 발언)도 심하고, 호객 행위도 엄청 심하다는 거다. 모로코 대부분의 도시에선 ‘메디나’라는 구시가지 지역 중심으로 관광을 하게 되는데 이 메디나가 미로처럼 복잡해 길을 잃기 참 쉬워 여행객들의 길을 찾아주곤 팁을 요구하는 일이 빈번하다고. 정말 모든 사람들에게 당부의 말을 듣고 떠난 모로코에서 우리는 당연히 극도로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모든 가방에는 자물쇠를 꼭꼭 채워 잠그고, 미어캣처럼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그렇게 모로코의 한 도시, 탕헤르에 도착했다.
탕헤르 공항에 내려 택시를 타고 (택시도 흥정 필수) 메디나 안에 있는 숙소로 향했다. 메디나 안에는 택시가 들어갈 수 없어 택시 기사님은 우리를 메디나 입구에 내려주셨다. 메디나 안으로 발을 딛는 순간 돌벽에 가로막혀 우리가 의지하던 구글 맵은 무용지물이 되었고, 짐을 들고 이도 저도 못 가고 두리번대는 우리를 보며 다가오는 현지인들이 괜히 무서워 일단 길을 아는 체하며 (티가 낫겠지만) 무작정 앞으로 걸었다.
좁은 골목골목으로 이루어진 탕헤르의 메디나는 정말 미로 같았다. 분명 다른 길로 걸었는데 아까 지나쳤던 가게가 또 나오는가 하면, 이곳도 저곳도 막다른 골목이고. 이번 여행 중 가장 패닉이었던 순간을 꼽으라면 이 순간을 꼽겠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어떡하지 어떡하지를 되뇌고 있을 때 한 할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어디를 가는 거냐고 물어보셨다.
‘아, 이게 그 말로 듣던 길 알려주고 삥 뜯기(?) 스킬이구나’라는 생각에 우리는 괜찮다고 길 안다고 어물어물하며 지나쳤다. 그분은 우리가 예약한 호텔의 이름을 얘기하며 혹시 이 곳에 가는 거냐고, 이 곳 손님들이 자주 길을 잃는다며 길을 알려주겠다고 따라오셨다. 이미 이 미로 속에 갇혀 지쳐버린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분이 호객 행위를 하는 거라 생각하며 "미안하지만 우리는 지금 당신에게 줄 돈이 없다"는 말을 꺼냈다. 하지만 ‘오케이’하고 그냥 지나갈 거라고 생각했던 우리의 반응과 굉장히 다른 반응이 나왔다.
“내가 언제 당신들에게 돈을 달라고 했습니까? 나는 당신들에게 돈을 요구한 적이 없습니다. 방금 당신들이 꺼낸 말은 굉장히 무례한 말입니다.”
그분은 굉장히 기분이 나빠 보였고, 단순한 호의를 베풀려고 한 노인이라면 당연히 나올만한 반응이었다. 아차, 우리가 크게 실수했구나. 편견을 가지는 것을 굉장히 경계하는 우리가 편견 속에 갇혀버렸구나.
“정말 죄송합니다. 우리가 크게 오해를 했습니다. 우리가 무례했습니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우리는 정중하게 사과를 했고, 그분은 ‘호의를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우리에게 숙소로 가는 길을 다시 한번 알려주고 홀연히 떠나셨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위험한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어느 정도 경계를 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경계라는 명목 하에 모로코 전체를 편견 속에 가뒀던 것이다. 물론 호객 행위를 하는 사람들도, 캣 콜링을 일삼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지만 어딜 가나 친절한 사람들도 많다. 어떻게 나쁜 사람들만 있겠는가. 나쁜 사람들이 만드는 안 좋은 결과들에만 너무 초점을 맞췄다. 조금은 경계를 풀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메디나가 눈에 들어왔다. 특정 가게들을 지표 삼아 좌회전 우회전만 기억하면 목적지를 찾는 게 그렇게 쉬울 수가 없었다. 심지어 파스텔톤의 페인트로 칠해진 그 골목들은 어찌나 예쁘고 이국적이던지. 그리고 모로코엔 친절한 사람들도 정말 많았다. 호텔에서 추천해준 메디나 안의 한 레스토랑 사장님은 우리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웃으며 다가와 카메라로 우리의 사진을 찍어주셨다. 그 노인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여전히 이들의 호의를 편견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을까.
그렇게 미안함과 감사함이 교차했던 모로코에서의 첫째 날은 다시 한번 편견의 무서움을 가르쳐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