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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 Dec 22. 2018

프라하에서 마이크를 붙잡고...

프라하에서 공연하며 대담한 나를 마주하기

프라하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베트남 카페가 있다. 커피맛은 물론이거니와 카페 분위기도 참 좋고, 직원들도 참 친절한 곳. 잠깐 함께 일하던 민박집 스탭 친구가 알려준 본인의 단골 카페인데, 내 단골 카페가 됐다.






프라하는 베트남 이민자들이 많아 베트남식 커피를 파는 카페나, 베트남 음식점이 참 많다. 이 카페의 직원과 사장님도 베트남 사람들인데, 웃음이 많고 참 친절하다. 게다가 어찌나 한류에 관심이 많던지 2NE1의 lonely를 함께 떼창을 하기도 했다. (물론 맨 정신엔 아니고 술 먹고)







이 카페는 수요일엔 각 나라의 손님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언어교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금요일엔 카페 한켠에 간이 무대를 설치해 '오픈 마이크'를 한다. 오픈 마이크는 서양 문화권의 레스토랑이나 카페, 술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신청한 사람이 노래방 장비를 이용하거나 직접 악기를 연주해 공연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미드에서도 종종 오픈 마이크 데이가 나온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 때 까지 합창부, 밴드부 등 여러 공연을 하며 노래를 떼어놓을래야 떼어놓을 수 없는 삶을 살아온 나는 오픈 마이크 얘기를 듣자마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이 카페는 노래방 장비가 있던 것은 아니고, 카페 사장님이 직접 기타를 연주한다고 했다.






공연 당일. 하나둘씩 손님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여러 곳에서 노래를 불러봤지만, 새삼 내가 프라하에서도 마이크 앞에 서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내가 참 대담하게 용기를 냈다고 생각했다. 곰곰이 기억을 더듬어봤다. 어렸을 때부터 아빠 회사 송년회에 따라가 노래를 불러 경품도 타오고, 중학교 땐 수업 듣기 싫어 선생님이 나와서 노래 불러볼 사람 하면 제일 먼저 손 들고나가 노래를 불렀고. 이게 나였다. 새삼 용기를 낸 게 아니라 원래 대담한 게 나였다.





Fly me to the moon, and let me play among the stars



나는 <Fly me to the moon>이라는 올드팝을 불렀는데,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는 그 순간 정말 달을 향해 날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곳에 있던 손님들 모두 내 노래를 귀 기울여 들어주었고, 노래가 끝난 후엔 박수갈채를 보내주었으며, 무대에서 내려온 내게 한 명 한 명 지나가며 목소리 참 예쁘다고 칭찬을 해줬다. 이러니 달로 안 날아갈 수가 있나. 그동안 어느 학교, 어느 회사에 묶인 이미지로 살던 내가 정말 오랜만에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 본연의 모습으로 사람들을 만났다. 무슨 과 누구누구, 어디 팀 누구누구가 아니라 그냥 나.

수식어가 하나도 붙지 않은 나 말이다.





아, 이런 시간이 얼마나 필요했던가. 이렇게 속 시원하고 후련한데 나는 그동안 뭐 그렇게 사람들 눈치 보며 살았나 싶었다. '내가 이 행동을 하면 저 사람은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나를 이상하다고 생각하면 어떡하?' 라는 쓸데없는 걱정으로 나를 얼마나 많은 범주안에 가둬놨던지.



Every once in a while, don't be afraid to break the rules.
You never know what can happen.
살면서 가끔은 규칙을 깨는 걸 두려워하지마.
너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잖니.

- 미국 드라마 <모던 패밀리> 시즌4 에피소드 마지막 화 중에서



나를 다시 만난 기분이었다.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참 감사했다. 이러려고 프라하 왔나 보다. 잠깐 잊고 살았던 나를 다시 찾으라고. 다시 담대해지라고. 조금 더 용기를 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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