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다 779 인생의 베일
영화 '페인티드 베일'
윌리엄 서머셋 모옴의 소설
'인생의 베일'이 원작인 영화
'페인티드 베일'의 내용은
원작과 조금씩 다르고 결말이 사뭇 다르다
소설보다 영화에는 희망의 따사로움이 있다
'사람들이 인생이라고 부르는
오색 베일을 들추지 마라'
퍼시 셀리의
'오색 베일을 들추지 마라'는 시와
단테의 신곡 '연옥' 편에 나오는
피아 이야기에 영감을 받아 소설을 구상한
서머셋 모옴은 중국 여행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생의 베일'을 썼다고 한다
키티 역의 나오미 왓츠는
불완전하고 결점 투성이지만
사랑스럽고 매력적이며
성장하고 성숙하는 모습까지도
솔직하고 도도해서 아름답다
월터를 연기한 에드워드 노튼은
차갑고 냉철하고 고지식할 만큼
바른생활 사나이지만 속마음은 따뜻하고
수줍은 츤데레 매력이 돋보인다
1925년을 배경으로
아련하고 부드럽고 섬세한 분위기에
잔잔히 젖어드는 시간의 흐름이
호수의 잔물결처럼 일렁이며 파고든다
영화 '페인티드 베일'이 보여주는 사랑은
서툴러서 시고 떫은 안타까운 풋열매 같지만
하나의 열매가 무르익기 위해
감당해야 하는 바람은 매섭기만 하다
남자를 사랑할 때 장점을 보고 사랑하는 건 아니라는 키티의 말이 씁쓸하게 들리고
서로를 향해 마음을 열어가던 중
아기를 가진 키티에게
내가 아버지 맞느냐 묻는 월터의 모습도
안쓰럽기만 하다
보육원 아이들 곁에 잠이 든 키티를 두고
콜레라 난민촌으로 월터가 떠난 후
키티에게 건네는 원장수녀의 말속에
영원한 사랑의 의미가 스며있다
'손이 더러워지면 씻는 걸 의무라고 하죠
열일곱에 하느님과 사랑에 빠져
처음엔 낭만적인 생각으로 열정을 다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감정은 무뎌지고
하느님은 실망을 주기도 하셨지만
이제는 무관심에 익숙해지고
고요히 자리를 지키게 되었고
하느님의 사랑이 떠나지 않을 것임을 안다'는
원장수녀의 말처럼
인간의 사랑도 비슷할 것이다
노부부가 소파에 나란히 앉듯이
사랑과 의무가 하나가 된다면
축복받는 거라며 웃는
원장수녀의 이야기는 따사롭지만
키티와 월터에게는 안타깝게도
노부부가 되어 소파에 나란히 앉는
축복이 허락되지 않는다
'당신 말이 옳아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서로에게 없는 것만 찾으려고 애썼어 '
그래도 용서하고 화해하며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의 축복은 받은 셈이니 다행이다
난민촌에서 콜레라에 전염된
월터의 곁에 머무르는 키티의 슬픔과
용서하라며 그녀의 곁을 떠나는
월터의 아픔은
중국의 수묵화 같은 풍광을 배경으로
잔잔히 흐르는 노래가 대신해 준다
'오랜 세월 그대를 사랑했고
영원히 잊지 못할 거라네'
용서와 화해를 통한
진정한 사랑의 여정을
해맑은 슬픔으로 노래하는 듯한
프랑스 민요 '맑은 샘물에서'의
가사가 애틋하다
'장미꽃이 아직 장미나무에
피어있다면 좋겠네
나와 내 친구가
같은 사랑 안에 있다면 좋겠네
오랜 세월 널 사랑했어
결코 잊지 못할 거야'
몇 년 후
런던에서 귀여운 아들과 함께
장미를 사는 키티는 한결 차분한 모습이고
월터라는 이름의 소년이
곁에 있어 덜 외로워 보인다
거리에서 우연히 옛 남자 찰리를 만나지만
별스럽지 않게 헤어지는 키티는
누구냐고 묻는 아들에게
별사람 아니라고 대답한다
가던 길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는
키티와 아들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하이 앵글로 끝나는
영화의 말미가 쓸쓸하고 적막하다
인생이라는 오색 베일을 들추면
적막함만 남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