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다 794 첫사랑은 안쓰럽다
영화 '체실 비치에서'
체실 비치에서 멀어지는
두 사람의 모습이 서로 다르고
또한 너무나 비슷해서
안쓰럽기만 하다
그녀가 입고 있는 파랑이
슬픔처럼 응어리진 세실 비치에서
플로렌스와 에드워드는
서로를 행복하게 해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헤어진다
새롭게 출발하는 순간을 성급하게
이별의 순간으로 만들어 버리고
포스터에 나오는 문구처럼
가장 행복했던 날 그들은 헤어졌다
젊음이란 그렇게 서툴기만 해서
뾰족한 유리조각처럼 날카롭고
청춘이란 그리도 성급한 바람이라
제멋대로 불어대는 것임을
그들은 몰랐다
지나고 나야 비로소
하나씩 둘씩 이해가 되기도 하고
또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는
사랑을 그들은 기다리지 못하고
놓아버린다
사랑이 반드시
이해를 동반하는 것이 아님을
그들은 어리고 젊어서 몰랐던 것일까
체실 비치에서 그들은
결혼한 지 6시간 만에
상처만 남기고 헤어진다
척 베리를 좋아하는 에드워드와
모차르트를 좋아하는 플로렌스
사랑스럽던 연인들이
성급하고 서툴기만 해서 어긋나고
서로에게 등을 보이며 멀어져 가는 모습이
텅 빈 해변처럼 쓸쓸하고 적막하다
플로렌스 역의 시얼샤 로넌이 좋고
더구나 에드워드를 연기하는
빌리 하울과 함께라니 더 좋을 수밖에
그들이 성급하게 헤어지는 연인이라 해도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다그치거나
서두르지 않는 영국 영화를 좋아하므로
차분한 걸음으로 따라가 본다
체실 비치는 조약돌로 이루어져 있는데
달걀만큼 큰 조약돌이 갈수록 점점 작아져
나중에는 완두콩만 해진다고 한다
체실이라는 이름도 조약돌에서 온 말이고
조약돌의 크기가 정확한 비율로 줄어들기 때문에
어부들은 어둠 속에서도
발에 밟히는 조약돌의 크기만으로
자신이 어디쯤 서 있는지 알 수 있다는데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했을까
커다란 바윗돌이 거센 파도에 맞서고 깎이며
달걀도 되고 완두콩도 된 것처럼
인생의 바위도 인생의 파도에 맞서고 깎여
달걀이 되고 완두콩이 되려면
길고 긴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한 것임을
그들은 몰랐다
에드워드의 음반 가게로
엄마의 생일 선물을 사러 와서
클래식을 좋아하는 엄마가
척 베리를 좋아한다고
서른여섯이니 엄마도 늙었다고 말하는
깜찍한 소녀가 플로렌스의 딸인 것을
알게 되는 에드워드는
척 베리의 음반을 선물하면서
생일 축하 인사를 전해달라고 한다
가게 직원의 축하라고 얼버무리며
시간이 흘러 완두콩만 한 조약돌이 된
나이 든 그들의 재회는 가슴 먹먹하다
플로렌스의 은퇴 공연장에 나타난
주름 가득 에드워드는 주름 듬뿍 플로렌스와
아련한 눈빛으로 재회한다
눈물을 흘리며 브라보를 외치는 에드워드와
바이올린 연주를 하며 흘리는
플로렌스의 눈물이 만나는 순간
C열 9번 자리에서 브라보를 외치겠다던
젊은 날의 약속을 비로소 지키는
첫사랑 연인들의 모습이
안쓰럽고 안타깝다
다시 체실 비치에서
파랑 옷을 입은 그녀와
등을 돌린 채
굳은 표정으로 서 있는 그는
서로에게서 멀어지며
새파란 여운을 남긴다
그 시절 그 자리로 되돌아간다 해도
그들은 헤어졌을 것이다
안타깝지만
지금은 지금이고
그때는 그때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