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다 793 사랑을 위한 날갯짓
영화 '벌새'
벌새라고 쓰고
사랑의 날갯짓이라 읽는다
사랑의 날갯짓이라 읽고
벌새의 날갯짓을 흉내 내 본다
쉽지 않다
1초에 아흔 번의 날갯짓은 도저히 무리
새 중에서 가장 작은 벌새는
그 작은 날개로 빠르게 날 수도 있고
한 자리에 가만히 떠 있을 수도 있다는데
은희가 그렇다 그러고 싶어 한다
1994년 열네 살 작은 소녀
은희는 벌새처럼 무수히 날갯짓을 한다
조그만 소녀가 빠른 날갯짓으로 날아다니며
꽃의 꿀을 먹는 벌새처럼 나풀거린다
문을 열어달라고 초인종을 누르는데
문이 열리지 않자 화를 내다가
자기 집이 아닌 걸 알고
계단을 투닥투닥 올라가는
첫 장면에서부터 은희의 날갯짓은
어설프고 서툴기만 하다
트램펄린 위에서 벌새처럼 뛰어오르는
은희의 서툴지만 부지런히 이어지는
나풀나풀 날갯짓이 안쓰럽고
안쓰러운 만큼 사랑스럽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엄마는
우두커니 먼데를 바라보느라
은희가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대답 없는 엄마의 뒷모습을 향해
엄마 엄마 엄마아 엄마아아 엄마아아아아~
부르고 또 불러도 엄마는 못 듣는다
은희가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무심히 머뭇머뭇 사라지는 엄마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은희의 눈빛이 안쓰럽다
불러도 대답 없는 사랑이여
허공 중에 흩어진 사랑이여
아버지도 엄마도 언니도 오빠도
단짝 친구도 남자 친구도
학교 선생님도 그리고 후배도
모두 자신들의 눈으로 은희를 바라보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은희를 사랑하고
자신들을 위해 은희를 버리기도 한다
그렇게 은희는 사랑을 배워갈 것이다
사랑에는 대답 없는 사랑도 있고
사랑이 반드시 준 만큼의 사랑으로
돌아오지 않기도 한다는 것을 배우며
그건 지난 학기잖아요~라고 말한 후배처럼
쿨하게 떨쳐내는 법도 배울 것이다
사랑이 때로는 독이 되고
폭력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날갯짓을 멈출 수 없는
어른으로 자랄 것이다
은희가 마음을 열고 기댈 수 있었던
영지 선생님의 말이 생각난다
'힘들고 지칠 때
가만히 손가락들을 들여다본다
지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그래도 손가락들은 움직이고 있다
움직이는 손가락들을 보면 또 힘이 난다'
영지 선생님이 은희에게 위로가 되었듯이
나중에 자신이 그린 캐릭터들이
누군가를 위로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은희는 이미 누군가를 위로하는
날갯짓을 하고 있다
스케치북 선물을
영지 선생님으로부터 소포로 받은
은희가 감사편지와 떡을 들고
소포 주소로 찾아가지만
영지 선생님을 만나지 못하고
분홍 보자기에 싼 떡을 전하지 못한 채
터덜터덜 돌아온다
그해가 1994년이고
성수대교가 무너진 해이므로
그렇게 은희의 마음 어디쯤도
바스락 소리 내며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남자 친구의 엄마는 은희더러
방앗간 집 딸이라고 하며
남자 친구의 손목을 잡아끌고 갔으나
영지 선생님은 떡을 잘 안 먹는데
은희네 집 떡은 맛있다고 했었다
자기네 떡은 최고의 쌀로 만든다며
활짝 웃던 은희는 살아가는 동안
영지 선생님 같은 위로자를
또 만나게 될 것이고
은희 자신도
누군가의 위로자가 되어줄 것이다
지금도 서툴지만 부지런히
벌새처럼 날갯짓을 멈추지 않는
은희라는 이름의 우리 모두에게
손 내밀어 토닥토닥~
서로에게 서로의 위로자가 되자고
다독다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