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다 814 사랑이라는 이름의 창문
영화 '집 이야기'
'아버지와 딸'이라는 노래가 있어요
'내가 태어나서 두 번째로 배운 이름 아버지
가끔씩은 잊었다가 찾는 그 이름
우리 엄마 가슴도 아프게 한 이름
그래 그래도 사랑하는 아버지'
아버지와 딸 이야기라서
마음을 기울이며 본 영화 '집 이야기'는
아버지 이야기고 가족의 이야기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 이야기라서
어둡고 슬프지만 저녁놀의 따스함이 흘러요
말도 없고 웃음도 없는 아버지 강신일 배우와
서툴고 까칠한 딸 이유영 배우의 연기가
담백하고 차분하면서도 깊숙해서
담담하고 흐릿한 회청색 분위기에
잔잔히 스며들듯이 보게 된
영화 '집 이야기'는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합니다
슬픔이나 아픔 그리고 추억까지도
켜켜이 세월의 먼지와 함께
아버지의 집에 걸린 묵은 달력에
그대로 쌓이고 쟁여진 듯 보입니다
언제부터 그 자리에 걸려 있었는지
알 수 없는 묵은 달력을 떼어내면
그 자리에 네모난 창문 하나 열릴 것 같은데
아버지는 묵은 달력을 그대로 걸어두고
창문 하나 환하게 낼 생각도 접은 채
혼자 살아갑니다
아날로그 방식으로
남의 집 닫힌 문을 열고 또 열지만
굳게 닫힌 가족의 마음은 열지 못한
외로운 열쇠공 아버지와
따뜻한 집이 필요한 딸 은서의
서툴고 서먹하고 불편한 동거는
시작부터 어설프기만 합니다
축하하고 싶지 않은 엄마의 재혼 소식에
종이봉투 하나 달랑 들고 제주도에 내려갔다가
엄마에게서 여행가방 하나를 얻어 올라온
은서는 살던 집 계약이 끝나가는데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하지 못한 채 어쩔 수 없이
당분간 아버지 집에서 살게 됩니다
은서가 들고 온 여행가방에
눈길을 주던 아버지의 무표정에
미안함이 담겨 있었음을
한참 나중에 알게 되죠
아버지가 짐을 풀려고 하자 퉁명스럽게
잠깐이니 마음대로 풀지 말라고 하지만
낡고 어둑하던 아버지의 집은
딸 은서의 등장으로 조금씩 밝아지게 됩니다
표현할 줄 모르는 아버지는 딸을 위해
새 수건을 분홍빛으로 골라 사기도 하고
딸이 좋아하는 복숭아 김치도 담그고
딸의 밥을 푸다가도
딸이 짜장면 시켜 먹자는 말에
푸던 밥을 다시 밥통에 붓고
짜장면을 시켜 먹기도 합니다
'구멍 안을 보니까 속을 알고
속을 아니까 열지'라면서
열쇠는 잘 알지만
가족들의 마음은 알지 못했고
디지털 문을 열지 못하듯이
가족들의 닫힌 마음의 문은 열지 못한
무뚝뚝하고 고지식하고 고집스러운
아버지에게도
마음속에 간직한 꿈이 있었죠
언젠가 번듯한 아파트로 이사해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었던 꿈을
마음속으로만 간직한 채
모두 떠나버린 집에서 외롭게 혼자 살며
창문을 만들면 떠날 수 없을 것 같아서
창문 없는 집에 살았다는 아버지를
은서는 조금씩 이해하게 되지만
깨닫는 건 왜 항상 한 걸음 느린 걸까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 끌어안은 아버지의 병은 깊어가는데
제주도에서 재혼한 엄마는
지구 반대편으로 재혼 여행을 떠납니다
결혼 후 신혼여행 대신
백화점에서 여행가방을 사주며
아파트 장만하면 언젠가 지구 반대편까지
가보자고 아버지가 약속했던 여행을
엄마는 다른 남자와 함께 하는 거죠
추억하고 꿈꾸며 살아가는
'집 이야기'는
먹먹한 만큼 따뜻하고
따스한 만큼 슬픈 영화입니다
창문 하나 없는
어둡고 좁고 갑갑한 집에 살다가
구멍 하나 없이 더 어둡고 좁고
갑갑한 관에 누운 아버지를 위해
아버지를 위한 마지막 창문 구멍을 내는
은서의 발간 손이 쓰라리고 아파 보입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열쇠가 있다면
세상 어느 문도 활짝 열 수 있지만
사랑도 표현하지 않으면
열쇠가 아닌 자물통일 뿐입니다
들여다보지 않고 헤아리지 않고
다정하게 건네지 않으면
사랑도 굳게 닫힌
하나의 문에 지나지 않는 거죠
사랑은 표현하는 것이고
집은 가족의 온기로 채워집니다
가족의 이해와 사랑이라는 창문이 있어야
밝고 환하고 따사로운 집이 되는 거죠
집은 가족이고
가족은 사랑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