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다 824 달에게 부치는 노래

영화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by eunring

목련 꽃이 가득한 아름다운 정원에

감미로운 목소리로 잔잔히 울려 퍼지는

아리아 '달에게 부치는 노래' 속에서

수를 놓거나 책을 읽는 데이지 마님과

자동차를 닦는 호크의 모습이

고즈넉하니 정갈하고 아름답습니다


70세가 넘은 나이에 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낸 어머니 데이지 마님을 위해

아들 불리가 고용한 흑인 운전기사

호크는 사실 까막눈이죠


볼 때마다 신문을 보던데~

라는 데이지 마님의 말에

그냥 사진으로 짐작한다는 호크에게

ABC를 알면 글씨를 읽을 수 있다며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다정한 데이지 선생님이기도 합니다


첫 글자와 끝 글자로 묘비 이름을 찾는 호크를 대견하게 지켜보는 데이지 마님

두 사람의 뒷모습이 햇살처럼 따사로워요

시작은 까칠했으나 시간의 물결에 흔들리며

순정한 우정으로 무르익어가는

노년의 풍경이 잘 가꾸어진 정원처럼

맑고 정겹고 아름답습니다


고집불통에 자존심 강한

유대인 부자 할머니 데이지 마님 역의

제시카 탠디의 연기가 자연스럽고

흑인 운전기사 호크 역의

모건 프리먼은 존재감으로 빛이 나고

그의 차분한 연기를 통해

호크의 캐릭터가 더욱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1950년대 인종 차별이 심했던 미국 사회를

남부 애틀랜타를 배경으로 그려낸

영화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는

여교사였던 유대인 데이지 마님과

흑인 운전기사 호크의 갈등과 화해와 우정을

수채화처럼 맑고 잔잔한 아름다움으로

그려내는데 서정적인 분위기가

드보르작의 오페라 '루살카'에 나오는

'달에게 부치는 노래'와

단짝 친구처럼 잘 어울립니다


유머러스하고 인내심 강하고

인간성까지 좋은 호크는

성격이 까다로운 어머니지만

고용주는 자신이라는 데이지 마님의 아들

워던 직물회사 사장 불리의 말에

어릴 때 돼지들과 레슬링 하던 때를 생각하며 참아보겠다고 합니다

데이지 마님이 호크를 무시하고

의심하고 차갑게 대하지만

사려 깊은 호크는 진정성으로 다가섭니다


운전기사가 필요 없다며 거부하던

데이지 마님이 6일 만에 호크의 차를 타는데

하느님도 6일 만에 세상을 만드셨다는

호크의 말이 재미나요


남편이 운전을 가르쳐주었다며

제한속도 준수하라고

천천히 갈수록 기름 소모가 적다고

나이 들었어도 정신력은 그대로라며

자신이 다니던 길만 고집하는

잔소리 끝판왕 데이지 마님은

바로 라떼 마님이십니다


아침 일찍 아들 불리를 소환해서

호크가 연어 통조림을 도둑질했다며

사생활을 지킬 수 없어 싫다고 불평하자

운전을 하든지 택시를 타든지

전차를 타든지 택시회사를 사든지

맘대로 하라는 아들의 말이 웃픈데

호크가 출근길에 연어 통조림을 들고 옵니다

어제 하나 먹었으니 채워두겠다고 하니

더 이상 불평할 수 없게 상황 종료~


유대인이라 크리스마스 선물 따위 안 한다고

옛다 오다 주웠다며 알파벳 교본을 건네며

연습하면 글씨를 잘 쓸 수 있을 거라고

아들에게는 비밀이라는 데이지 마님이

소녀처럼 귀여워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며

너그럽고 여유와 웃음을 잃지 않는

호크에게 전염이라도 되듯이

까칠한 데이지 마님이 마음의 문을 열고

노년의 우정을 쌓아가는 모습이

부드럽고 따사로운 달빛 같아서

'달에게 부치는 우정'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월터 삼촌의 생일파티 가는 길에

어린 소녀시절 처음 바다를 본 이야기를 하며 손으로 바닷물을 찍어 먹어봤다며

바보 같았다고 하자

추억에 바보는 없다고 웃어주는 호크 멋져요


도우미 아이델라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비스킷과 닭튀김밖에 할 줄 모르는

데이지 마님의 집은 한순간에

쓸쓸해지고 적막해집니다


눈보라 날리는 빙판길을 달려

커피와 도넛을 사 온 호크를 반기는

데이지 마님과 호크가

아이델라의 커피맛을 추억하는데

아이델라는 운이 좋았다며

호로록 커피를 마시는 장면은

노을 지는 인생의 들녘처럼

고즈넉합니다


느닷없이 학생들의 숙제 뭉치를 찾아

온 집안을 헤매는데이지 마님은

호크의 손을 잡으며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친구라고 말하죠


데이지 마님은 요양원으로 가고

아름다운 달빛 우정이 쌓여 있는

데이지 마님의 집은 팔리게 됩니다

이제는 운전할 수 없는 나이가 되어

손녀딸이 운전해주는 차를 타고 온 호크는

불리와 함께 데이지 마님을 만나러 가죠


아들 불리보다 호크를 더 반기며

까칠 데이지 마님이 어떻게 지내냐고 묻자

호크는 최선을 다한다고 말합니다

파이를 떠서 먹여주는 호크를 보며

소녀처럼 웃는 데이지 마님은

여전히 미스 데이지입니다


까칠하지만 아름답고

기분 좋은 쓸쓸함으로 마음을 울리는

영화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를 보는 시간은

상냥한 데이지 꽃 한 다발 선물 받은

잔잔한 감동의 시간입니다


앙증맞은 데이지 꽃 같은 소녀는

사랑스러운 미스 데이지가 되고

고집쟁이 데이지 마님으로 늙어가지만

마음은 언제나 수줍은

까칠 소녀 데이지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위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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