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다 828 어느 갠 날

나비부인의 노래

by eunring

'어느 맑게 갠 날 수평선 너머로

한 줄기 연기가 오랫동안 솟아오르고

그리고 배가 나타나겠지

그대라면 너무 기뻐서 어떻게 하나'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 2막에 나오는

아리아 '어느 갠 날'이 어울리는

파랗게 맑게 갠 날입니다


이렇게 추운 겨울날은 정말 오랜만이죠

안 그래도 집콕인데 더 꽁꽁 싸매고

집콕 중에 듣는 '어느 갠 날'은

청명한 슬픔으로 눈이 시립니다


항구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 집에서 아들을 낳아 기르며

남편이라 믿는 핑커톤이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나비부인 쵸쵸상이

'외국 남자는 한번 가면 돌아오지 않는다'는

가정부 스즈끼의 말을 가로막으며

남편이 돌아오는 날을 환상 속에 그리는

아름답고 애달픈 노래죠


'그를 맞이하러 내려가지 않을 거야

가지 않고 저쪽 언덕 끝에서 기다려야지

몇 시간이든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오랫동안 기다려도 힘들지 않아'


그녀는 남편이 돌아와

바베나 향이 나는

귀여운 내 사랑 나비부인이라

불러주기를 기다립니다

그렇게 믿고 기다리는 그녀의

간절함이 '어느 갠 날' 노래 속에서

나비처럼 나풀대고 팔랑거리지만

희망의 그림자인 듯 불안도 스며 있어요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은

1900년대 일본 규슈 나가사키가 배경입니다

몰락한 집안 사정으로 게이샤가 된

나비부인 쵸쵸상과 미국 해군 중위 핑커톤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렸는데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군요


곧 돌아오겠다던 핑커톤은

미국에서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고

3년 후 아내 케이트와 함께 돌아와

아들을 데려가겠다는 말에

절망한 나비부인은 불안의 그림자를 안고

저 세상으로 훨훨 날아간다는

애달픈 이야기죠


파랗게 맑은 이 겨울날

나비부인의 아리아 '어느 갠 날'의

나비는 슬픔을 안고 훨훨 날아가 버렸지만

우리들의 맑게 갠 어느 날을 위해

희망의 나비는 천천히 날아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건

변심한 연인이 아니라

하얀 눈의 흔적 위로

아낌없이 쏟아져내리는

금싸라기 같은 희망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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