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다 937 바로 그 시간

라흐마니노프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 1번'

by eunring

한때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을

듣고 듣고 또 들으며 지낸

시간들이 있습니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작곡가에 지휘자이며

피아니스트인 라흐마니노프는

유난히 손이 컸답니다

도 음부터 한 옥타브 위의 솔 음까지

12도를 거뜬히 짚을 수 있었다고 해요

도 음부터 한 옥타브 위의 라 음까지

13도까지도 물론 가능했다죠


피아니스트에게

손은 아주 중요하다고 하는데

큰 손을 가진 라흐마니노프가 작곡한

피아노곡들은 손이 작은 사람들에게는

연주하기가 무척 버겁답니다


손이 컸던 그는 화음을 많이 사용했는데

3~4음 이상의 음을 동시에 눌러야 해서

손이 작은 피아니스트는

크고 옹골찬 소리를 내기가 어렵다고 해요


키가 무려 198센티나 되고

한 뼘의 길이가 자그마치 30센티나 되었다는

그는 희귀 유전병을 앓았다고 합니다

손의 크기로 기네스북에 실리기도 했다는군요


큰 몸과 큰 손에서 나오는 소리가

얼마나 튼실하고 현란했던지

몰래 가슴속에 감추어두었다가

피아노 연주를 할 때만

세 번째 손이 튀어나온다는 말도 있었답니다


키도 무척 큰 키다리 아저씨에

무뚝뚝한 성격이었던 그가 작곡한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 1번'은

젊은 시절에 쓴 작품으로

차이코프스키에 헌정했다죠


바이런 등 네 명의 시인의 작품을

음악적으로 형상화한 곡이라고 해서

'회화적 환상곡'이라는 별칭을 가졌대요

러시아의 우수와 서정미가 가득하고

4개의 곡이 저마다 개성을 지니면서도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이어진답니다


라흐마니노프가 읽고

음악적 영감을 받았다는 네 편의 시는

레르몬도프의 '곤돌라의 노래'

바이런의 '밤과 사랑'

튜제프의 '눈물'

스테파노비치 콤냐코프의 '부활절'이랍니다


어둠이 장작불처럼 자작자작

따스하고 정겹게 타들어가는

지금 이 시간과 어울리는

바이런의 '밤과 사랑'을

읽어봅니다


'지금은 나뭇가지 사이로

나이팅게일의 고음이 들려오는

바로 그 시간

지금은 연인들의 속삭임 속에서

달콤한 서약이 오가는

바로 그 시간

그리고 부드러운 바람과

스치는 바다의 파도소리가

쓸쓸한 음악이 되어 귓전을 울리는

바로 그 시간'


고즈넉한 지금 우리의 시간이

바로 그 시간입니다

어둠의 빛으로 깊숙이 저물어가는

우리들의 지금 이 시간을 위해

별들이 반짝이고 있을까요?


창문을 열고 내다봅니다

까만 밤하늘에 별은 보이지 않고

제법 도톰해진 달님이 높이 떠 있어요

라흐마니노프의 '회화적 환상곡'을 듣기에 좋은

차갑고 조금은 울적한 겨울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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