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다 936 제인이라는 이름의 당돌함

영화 '제인 에어'

by eunring

학생 시절 밤새워 읽던

'제인 에어'를

이제는 영화로 봅니다

우아하고 차분한 영상미에 젖어들며

당당하고 아름다운 제인 역의

미아 와시코브스카를 봅니다


제인 에어에 잘 어울리는 배우죠

순수함과 당돌함이 매력적입니다

예쁘지는 않으나 홍조 띤 얼굴이 어울리고

온화한 눈빛이 마음에 꽂힌다고

로체스터(마이클 패스벤더)가 말하죠

사랑하면 눈에 콩깍지가 씌운다더니

내가 보기엔 고집스러운 눈빛인데요~^^


19세기 영국의 보수적인 사회에서

가진 것도 없고 부모도 없이

모질고 매정한 외숙모 손에서 자라던

흙수저 제인(미아 와시코브스카)은

무늬만 자선학교인 로이드 기숙학교에서

제인의 착함을 알고 먼저 손을 내민

헬렌과 속 깊은 친구가 됩니다


친구 헬렌의 죽음이 제인에게는

슬프고 아픈 기억으로 남지만

'남을 원망하며 살아가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지 않니? 누군가를 원망하는 한

우리 자신도 결코 행복해질 수 없어'라는

헬렌의 말을 기억합니다


남에게 의지하거나

종속적인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

일자리를 찾아 손필드 저택의

피후견인 아델의 가정교사가 된 그녀는

음울하고 고립된 느낌의 손필드 저택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페어팩스 부인에게

중얼거리듯 나지막이 말하죠


'저기 보이는 지평선이

한계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와요'

요즘 말로 넘사벽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생망이라고 해야 할까요?

제인이 느끼는 높고 단단한

현실의 벽이 안타깝습니다


적막하고 외로운 손필드 저택에서는

머리카락이 흑단처럼 까맣고

피부는 달처럼 하얗고

눈은 사파이어 같은 여인이

깊은 밤중에 복도를 걸어 다닌다는

아델의 이야기를 듣기도 합니다

물론 아델도 들은 이야기라지만

몹시 음울한 이야기죠


여자도 남자처럼

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제인에게 산책을 권하며 페어팩스 부인이

부탁한 우편물을 부치러 가는 길에 제인은

안개 낀 숲 속에서 로체스터와 만나는데요


말을 타고 오던 로체스터가

제인을 피하려다 넘어져 발목을 다칩니다

첫 만남은 그다지 로맨틱하지 않은 상황이지만

면접에서 로체스터는 제인에게 호감을 갖게 되고

로체스터의 방에 불길이 번지는 걸

제인이 발견해 로체스터를 구하게 되죠


석 달만에 다시 돌아온 로체스터는

여전히 까칠 대마왕입니다

어린아이(아델)를 좋아하지 않고

늙은 여인(페어팩스 부인)도 좋아하지 않는데

제인과는 잘 지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제인에게 딴 세상 사람 얼굴 같다고 하죠


소탈함과 자유를 혼동하지 않는다는 제인에게

생기 있고 건강하고 티 없이 맑은 여인이

자신을 회생시킬 수 있으리라는

로체스터의 뜬금 고백에는

작고 앙증맞은 보랏빛 꽃 한 송이가

덤으로 따라와 제인의 머리에 꽂히죠


'가난하고 어리석고 평범한 여자라고 해서

감정도 영혼도 없는 줄 아느냐'라는

제인의 말에 로체스터는

인연의 붉은 실까지 덤으로 건넵니다

교감의 끈이 끊어지면 아플 거라며

왼쪽 갈비뼈 아래 실이라도 매달린 것처럼

제인에게 단단히 매듭지어져 있는 것 같다고

자신의 손과 마음을 받아달라는 고백에

제인 역시 흔들리지 않을 수 없겠죠


그러나 두 사람의 결혼식에

로체스터의 결혼 증명서를 들고 나타난

뜻밖의 손님 때문에 결혼식은 파사삭

소리도 없이 깨져 버립니다

웨딩드레스를 벗어던지고

로체스터에게 가는 제인은

울지 않아서 더 슬퍼 보입니다


모든 것이 변했으니 떠나야 한다는 제인에게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사랑하겠다는

로체스터는 버사에 대한 진실을 말합니다

15년 전 사랑 없이 결혼한 아내 버사가

정신병을 앓게 되었는데도

차마 정신병원으로 보내지 못한 채

평생 버사라는 사슬에 묶인 안타까운 사연이죠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는 제인에게

자유 의지로 자신에게 와 달라고 하지만

제인은 가방을 챙겨 떠납니다

장미꽃 핀 정원을 지나 슬픈 바람처럼

넘어지고 엎어지며 안갯속으로 떠나죠

황량한 언덕에 누워 바람과 함께 우는

제인의 모습이 안쓰럽습니다


다시 리버스의 작은 학교로 돌아온 제인은

돌아가신 숙부의 유산을 물려받게 됩니다

'선교사의 아내가 되어

인도로 함께 가자'라는 리버스의 청혼에

사랑보다는 진정한 벗이 되고 싶다고

사랑 없는 결혼을 거부하는

제인의 귀에 문득 바람소리에 실려

로체스터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로체스터의 간절한 그리움이

제인의 마음에 닿았던 걸까요?

'어디예요? 기다려줘요 제가 갈게요'

제인은 바람을 안고 떠났듯이

다시 바람을 안고 손필드로 돌아갑니다


손필드 저택으로 찾아간 제인 앞에는

불에 탄 저택의 폐허만 앙상하게 남아 있고

불을 낸 부인 버사를 구하려다 부상을 당한

로체스터는 상처투성이에

눈까지 멀게 된 안타까운 모습으로

애완견 파일럿과 함께 정원에 앉아 있다가

바람결에 제인을 느낍니다


'이 느낌은'

제인의 손을 잡고

제인의 얼굴을 만져보며

'제인 에어'라고 중얼거리다가

다시 말잇못 로체스터에게

제인이 툭 던지는 말은

'로체스터가 할 말이 없다니'

꿈이라고 중얼거리는 로체스터에게

다시 제인이 말합니다

'그럼 깨어나요'


영화는 끝이 나지만

제인의 당당한 매력에서 깨어나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제인 에어'를 밤새워 읽던

그 시절의 순수함을 기억하며

다시 '제인 에어'를 읽고 싶은

겨울의 끝자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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