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다 841 함박눈과 판당고
함박눈과 낮잠
어설픈 낮잠에서 깨어나니
지금 창밖에는 함박눈이 펑펑
습관처럼 켜 놓은 TV에서는
보케리니의 '판당고'가 흐르고 있어요
낮잠과 함박눈과 판당고
낮잠은 꿀맛 같고
함박눈은 소리도 없이 매정하고
판당고는 캐스터네츠 소리로
덜 깬 잠에서 나를 끌어당깁니다
어릴 땐 눈이 오면 신났다고
뽀드득 눈 밟는 소리가 좋았다고
엄마가 말씀하시면 그렇다고
맞장구를 쳐 드리지만
나는 이제 쏟아지는 눈이
그다지 반갑지 않아요
어릴 땐 엄마처럼
눈이 오면 좋긴 했었지만
이제 더 이상 어리지 않거든요
마구 흐트러지는
창밖의 눈을 잠시 내다보다 말고
보케리니의 '판당고'에 귀를 기울입니다
기타 5중주 4번 '판당고'를 작곡한
보케리니처럼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까칠해져 버렸어요
우아하고 아름다운 '미뉴에트'로 사랑받는
보케리니는 하이든과 모차르트와
동시대를 보낸 이탈리아 작곡가인데요
'판당고'는 스페인의 색채가
열정적으로 묻어나는 춤곡이랍니다
현악 4중주에 기타와 캐스터네츠가
함께 하는 '판당고'는
기타가 스페인의 분위기를 더해주고
캐스터네츠가 감칠맛을 곁들인답니다
스페인 춤곡이 이탈리아 작곡가
보케리니의 작품인 이유가 분명 있겠죠?
로마에서 첼로 신동으로 이름을 날리다가
마드리드에서 활약하게 된 그에게
왕이 말씀하시기를
'새 작품이 마음에 안 드니
좀 바꿔 보시게'
보케리니는 기분이 확 나빠져
왕이 마음에 안 드신다고 지적질한 부분을
두 배로 늘려버리고 당당히 파직당하는
까칠함을 보였답니다
왕이 죽은 후 다시
제2의 고향 마드리드로 돌아간
보케리니는 젊은 시절의 추억으로 가득한
스페인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냈으니
그의 손끝에서 태어난
'판당고'에는 스페인에 대한
그의 지극한 사랑이 듬뿍 담겨 있는 것이죠
나중 나중에 엄마처럼 나이 들면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펑펑 함박눈 내리던 날
낮잠에서 깨어나 나른한 순간
보케리니의 '판당고'에서 울려 나오는
캐스터네츠 소리가 참 좋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