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다 865 불량 가족이랍니다

일본 영화 '어느 가족'

by eunring

가족은 가족인데

알고 보니 불량 가족입니다

더 알아보면 한없이 불량하고 부족하지만

부족한 만큼 따뜻한 가족입니다

좁은 집에서 부대끼며

가난과 상관없이 웃으며 사는

불량한 '어느 가족' 이야기의 원제목은

'만비키 가족(좀도둑 가족)'이랍니다


'낳으면 다 엄마가 되느냐'라는

엄마 노부요의 물음에

안 낳으면 엄마가 될 수 없다는

무심한 대답이 서늘하니 무정하고

아이들이 '엄마 어머니' 무어라 불렀느냐는

따가운 질문에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눈물을 닦다가 한참 후에야 머뭇거리며 내뱉는 노부요의 '글쎄요'라는 대답이 아릿합니다

엄마인 듯 엄마 아닌 엄마 같은 노부요 역의

안도 사쿠라의 가슴 저미는 눈물 연기 속에

진짜 엄마가 있습니다


가르칠 게 훔치는 것밖에 없었다는

아빠 같지 않은 아빠 오사무 역 릴리 프랭키의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연기는 더 말할 것 없고

할머니 하츠에를 연기하는 키키 키린의

물 같은 연기는 더 말해 무엇하겠어요

영화에서처럼 이제는 하늘의 별이 된

그녀의 모습이 유난히 정겹습니다


오사무가 쇼타와 낚시를 하고

눈 내리는 밤 못난이 눈사람을 만들며

함께 마지막 밤을 보낸 후

'이제 아빠가 아닌 아저씨로 돌아가겠다'라고

말하는 장면도 안쓰럽고 쓸쓸합니다

그렇게 오사무는 비로소 아빠가 되는 거죠


아빠라고 불리고 싶은 오사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저씨라고 부르던 쇼타는

아빠라는 말을 마지막 헤어지면서 말합니다

그것도 보호시설로 떠나는 버스를

뒤쫓아오는 오사무를 향해 아빠~라고

혼잣말처럼 불러봅니다


가족 영화의 거장으로 불리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어느 가족'은

아주 특별하고 각별하고 유별난 가족입니다

할머니의 연금과 좀도둑질로 살아가는

알고 보니 엉터리 불량 가족

그러나 한없이 정겹고 따사로운 가족이죠


폭력 남편에게 시달리다

살인까지 하게 된 비정규직 노부요

우연히 노부요를 돕게 된 일용직 오사무

남편을 잃고 연금을 받으며

혼자 사는 할머니 하츠에

하츠에 남편의 불륜 상대의 손녀 아키

파칭코 주차장 빨간 차 안에 버려진 쇼타

친엄마의 폭력과 무관심에 방치되어 있던 유리


우연히 만나게 된 가족 아닌 가족이

좁은 집에 모여 서로에게 기대 살며

고타츠에 몸을 녹이며 국수를 먹고

비 쏟아지는 여름날 노란 옥수수도 삶아 먹고

좁다란 마루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먼 데서 벌어지는 불꽃놀이도 구경하면서

잘 안 보이지만 퐁퐁 달리아도 있다고

폭죽은 안보이니까 터지는 소리를 보라며

행복을 나누고 바닷가에서 물놀이도 하는

가난하고 슬프지만 아름다운 가족입니다


피가 이어지지 않아 더 좋은 점도 있다고

그래서 더 오래가는 거 아니냐는

노부요의 말에

괜한 기대 안 하게 되니 좋다는 할머니는

종아리 검버섯을 어루만지다가

죽음을 예감한 듯 혼잣말로 '다들 고마웠어'

파도와 노는 가족들 뒷모습을 보며

쓸쓸한 작별인사를 미리 남깁니다


'건강한 새 이를 주세요'라며

유리의 빠진 앞니를

쇼타가 지붕 위로 던지던

할머니는 세상과 작별하고

어쩔 수 없다며 구급차를 부르는 대신

할머니가 외로울 테니

조금 더 곁에 있어주자는

노부요의 말도 가슴 먹먹하고

비밀인데 할머니는 원래 없었고

우리 가족은 다섯이라고 다짐하는

오사무의 말도 가슴에 묵직하게 얹힙니다


할머니의 삶은 행복했던 것일 수도 있다는

오사무의 말이 맞을 수도 있어요

어쨌든 혼자가 아니었으니까요

할머니를 집안에 묻고 난 후

자기가 죽으면 정원 연못에 묻어달라는

오사무의 말에 연못이 크지 않다는

노부요의 대답도 씁쓸합니다


할머니 대신 할머니의 연금을 찾는

나쁜 일은 아니라는 쇼타는

남의 걸 훔치는 건 어떠냐고 노부요에게 묻죠

진열장의 물건은 아직 누구의 것도 아니라고 오사무가 말했다는 쇼타에게

가게가 망하지 않을 정도로만 훔치면

괜찮지 않을까 라는 노부요의 대답이 웃퍼요


파란 구슬을 불빛에 비춰보며 노는

쇼타와 유리의 모습이 애잔합니다

구슬 속에서 바다가 보인다는 쇼타와

우주가 보인다는 유리는

서로를 아끼는 다정한 오누이죠


가게 앞에서 머뭇머뭇

물건을 훔치기 전의 준비운동과도 같은

쇼타와 유리의 손놀림이 안쓰럽고

유리를 좀도둑질에서 구하기 위해

일부러 양파 한 자루를 안고 뛰는

오빠 쇼타의 안간힘이 안쓰러워요

잡히지 않으려고 다리 아래로 떨어지는 쇼타와

이리저리 데구루루 굴러가는 양파들처럼

가족은 그렇게 흩어지게 됩니다


다리는 부러졌으나 머리는 안 다쳤다는

쇼타를 병원에 두고 도망 가려다 잡히게

가족의 비밀이 하나둘 밝혀집니다

할머니 하츠에의 시신 유기와

주워온 쇼타와 유리의 일 등이 드러나자

전과자인 오사무를 대신해

노부요가 모두 혼자 했다고 끌어안습니다


버린 게 아니라 주운 거라고

누군가가 버린 걸 주웠다고

버린 사람은 따로 있다는 노부요는

버려진 아이들을 거둔 죄로 유괴범이 됩니다

그래도 그동안 즐거웠다고

면회 온 오사무와 쇼타에게 웃으며 말하죠

'삶의 덤이야'라고 웃는 노부요는

정말 그래 보입니다


보호시설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아빠라고 불러보는 쇼타의 모습과

폭력을 일삼는 친엄마의 집으로 돌아온 유리가

여전히 혼자 구슬을 세며 노는 모습이 안쓰러워요


오빠 쇼타와 가족이 그리워 창밖을 내다보며

엄마 노부요에게 배운 노래를 부르는

유리의 모습이 파란 구슬처럼 슬프지만

가족 아닌 가족과 함께 했던 기억이

노부요의 말처럼 삶의 덤으로 남겠죠


아스라이 그러나 따스한 기억으로

파란 구슬만큼의 행복으로 남아서

문득문득 떠오를 때마다 웃음을 주고

힘이 될 거라 생각하니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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