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다 891 음악과 음식 사이

일본 영화 '남극의 세프'

by eunring

남극이라면 당연히

귀여운 펭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펭귄도 바다표범도 아무것도 없는 남극입니다

너무 추워 바이러스조차도 살지 못하는

극한의 추위 속에서 그리움과 외로움을 견디며

8명의 대원이 1년 반 동안 살게 됩니다


화상 인터뷰에서 초등학생들이 물어요

펭귄도 없고 바다표범도 없으면

그럼 뭐가 있냐는 질문에

'우리가 있단다'라고 대답합니다

귀여운 동물은 없느냐는 질문에

대원들은 대답 대신 웃픈 표정입니다


무얼 먹느냐는 유카의 질문에

남극의 셰프 니시무라가

일본에서와 비슷하다고 하죠

혼자 8명분의 식사 준비가 힘들지 않냐고 묻자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적응이 되었다고

외롭지 않냐고 물으니 모두 같은 처지니까

함께 견디고 있다고 대답하며

맛있는 걸 먹으면 기운이 난다고 웃어요

엄마에게 맛있는 걸 해 드리라고요


돔 후지 기지에는 8명의 대원이 사는데

최강 추위와 고단한 작업에 지쳐가면서

지긋지긋하지만 도망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며

니시무라 셰프의 요리를 유일한 낙으로 삼고

아침이면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서곡을 들으며 잠에서 깨어납니다


점심으로 주먹밥과 된장국을 준비하고

자전거 꽁무니에 매달려 눈밭을 돌아다니며

니시무라 셰프가 점심식사 시간과 메뉴를 알릴

바그너의 악극 '니벨룽겐의 반지'에 나오는

'발퀴레의 기행'이 흘러나오죠


연어 장조림 명란젓 연어알을 넣은

고향의 맛 주먹밥과 된장국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부리나케 달려오는 대원들의 모습은

'발퀴레의 기행'에 나오는

8인의 발퀴레 같아요


새하얀 얼음 밭에 붉은 과일 시럽을 뿌려

네모난 타자석을 만들고

빙수를 먹듯이 숟가락으로 퍼 먹다가

야구를 하는 모습도 재미나고

대원의 생일날이면 특별한 음식으로

행복을 나누는 모습도 애잔합니다


6월이 되어 하루 종일 어둠에 휩싸이는

극야 현상이 일어나고 하지 축제가 열리자

멋지게 정장을 차려 입고

엘가의 '사랑의 인사'를 들으며

거위의 간 푸아그라를 우아하게 먹고

발사믹 소스를 곁들인 농어를

맛있게 먹는 모습도 제법 근사합니다


서로를 돕고 챙기며 중국요리도 즐기지만

밤에 몰래 라면을 먹는 이들이 많아

비축해 놓은 라면이 그만 다 떨어지자

어깨 툭 떨구고 상심하는 모습에서는

짠내가 폴폴~


잠이 오지 않는다며

의사에게 가는 대신 니시무라 셰프에게 와서

'내 몸은 라면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라면이 다 떨어졌으니 무슨 낙으로 사느냐고

차슈 없이 면과 국물만 있으면 된다'며

눈물까지 흘리는 쿠로다 대장도 안쓰럽고

쭈그려 앉아 버터를 먹고 버터에 집착하는

대원의 건강을 걱정해서 버터를 빼앗아

요리조리 달아나는 셰프도 애잔하고

여자 친구와 통화로 위안을 삼는

연구 보조원 대학원생이 여자 친구로부터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소식에

얼음 밭에 납작 엎드려 시부야 가고 싶다고

징징대는 모습도 짠하죠


서로에게 의지하고 서로를 챙기며

티격태격 다투기도 하면서

니시무라 셰프의 돌밥 돌밥에 위로받으며

외로움과 맞짱 뜨고 그리움을 견뎌내는

8인의 우정이 안쓰럽고 따사롭습니다


다툼을 말리다가 부적처럼 간직하고 있던

딸 유카의 아랫니가 얼음구멍으로 빠지자

상심한 니시무라 셰프를 달래주려고

나머지 대원들이 함께 하는 요리는

어설프지만 사랑이 듬뿍 담긴

눅눅한 닭튀김입니다


체할 것 같다며 닭튀김을 눈물과 함께 먹는

니시무라 셰프의 면발 만드는 모습이 진지하고

드디어 차슈까지 곁들인 라면 한 그릇의 행복은

후루룩~ 면치기 소리가 대신합니다

엄청나게 예쁜 오로라 소식에도

오로라 따위 뭣이 중헌디~

면 불겠다며 오로라 아닌 오로지

라면 한 그릇에 집중하는

대원들의 모습이 웃퍼요


8인분의 아침 식탁을 부지런히 차리는

니시무라 셰프는 엄마 같아요

실제로 남극 관측 대원으로 조리를 담당하는

남극의 셰프였던 니시무라 준의 유쾌한 에세이

'재미있는 남극 요리인'이 원작이고

영화 속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은

'카모메 식당'의 푸드 스타일리스트 솜씨라니

역시나~!!


아무것도 없고 오직 추위뿐이지만

마음을 녹이는 따뜻한 음식이 있고

새하얀 얼음 밭을 물들이는 음악도 함께 하고

웃음과 사랑이 있으니 행복한 영화입니다


음식은 따뜻한 일상이고

외로움을 달래주는 소중한 에너지인 거죠

집에 돌아와 가족들과 놀이동산에서 먹는

햄버거 한 입에 '맛있다'라고 중얼거리는

니시무라 셰프의 모습이 뭉클합니다

최고의 음식이란 무엇을 먹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먹느냐에 달린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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