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다 948 사라지는 별똥별처럼
영화 '수상한 교수'
조니 뎁을 봅니다
죽음 앞에 선 한 남자를 봅니다
느닷없이 닥쳐온 시한부 삶과 맞짱 뜨며
어차피 이생망이니 이왕이면
삶의 마지막 1초까지도 유쾌하고
재미나게 살자고 다짐하는
리처드 교수 역의 조니 뎁 배우를 봅니다
그동안의 캐릭터들에서 보여준
독특한 특수분장을 말끔히 지우듯
세상 규칙이나 간섭 따위 휘이 내던진
맨얼굴의 조니 뎁이 매력적인 앞머리 나풀대며
별똥별처럼 사라질 마지막 순간을 위한
작별 여행을 시작합니다
'수상한 교수'라는 우리 제목보다는
'리처드가 작별인사를 한다'라는
원제목이 더 마음에 들어요
6장으로 이루어진 영화 '수상한 교수'는
죽음을 앞둔 영문과 교수 리처드가
자유분방한 막장 수업의 시작하며
진정한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짧고도 웃픈 여정을 보여주는데요
죽음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신파가 아닌 유쾌함으로 끌어안은
조니 뎁의 명연기에 녹아들어 가며
잠시 웃다가 진지해지다가
어쩔 수 없이 울게 되는
눈물 코미디입니다
1장 '할 말이 있어'에서
치료하면 1년에서 1년 반
치료하지 않으면 반년 정도 남은
폐암 말기 선고를 받은 날 리처드 교수는
아내와 딸과 함께 하는 저녁식사 시간에
자신의 병을 얘기하려다 그만 기회를 놓쳐요
딸 올리비아(오데사 영)가 먼저 할 말 있다며
여자가 좋다고 여자 친구가 있다는
폭탄선언 후 자리를 떠나버리고
리처드와 아내 베로니카 두 사람만
덩그러니 남게 됩니다
할 말은 리처드가 해야 할 판인데
아내 베로니카에게 또 선수를 빼앗기죠
남자 있다며 리처드의 대학 총장과 사귄다는
갑작스러운 아내의 바람 얘기를 들으며
리처드는 자신의 암 발병 사실은
차마 꺼내지도 못합니다
2장 빌어먹을 똑바로 해
3장 난 정말 죽어요
4장 정말 아프기 시작해
5장 아직 말할 게 있어
각 장에 붙은 소제목들만 봐도
대강 스토리가 이어지고 꿰어집니다
그래도 울퉁불퉁 까칠하게 구는 리처드 곁에
감성 충만한 친구 피터(대니 휴스턴)가 있어
리처드의 시한부 비밀을 아련하게 보듬어주고
대신 울어주니 다행입니다
6장 '때가 되었습니다'에서
딸 올리비아와 나누는 대화가
애잔하고 눈물겨워요
기회는 한 번뿐이라고
리처드는 딸에게 말합니다
'단 한 번뿐인
그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면 안 돼
놓치지 말고 그걸 움켜 잡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해
모든 순간을 음미하고
모든 호흡 찬미해야 해'
모든 순간을 음미하고
모든 호흡을 찬미하라는
리처드의 눈빛이 간절하고 애틋합니다
딸에게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스스로에게 건네는 말 같아요
그렇군요
모든 순간과 모든 호흡을
음미하고 찬미해야 하는군요
한동안 기억에 남을 명대사입니다
5장 '아직 말할 게 있어'에서
리처드가 자신의 시한부 삶에 대해
말했기 때문에 딸 올리비아도
아빠의 병을 짐작하고 있어요
괜찮으냐는 딸의 물음에
리처드는 읊조리듯이 말합니다
'난 아파 올리비아 난 아프단다'
'괜찮아지겠죠'
'아니 괜찮아
넌 괜찮을 거야 넌 잘 지낼 거야'
어디 좀 다녀올 거라고
리처드는 덧붙여요
'널 많이 사랑한단다
네 길을 계속 가렴 넌 잘하고 있어'
떠나는 순간까지도 딸을 사랑하고 격려하는
리처드의 모습이 한없이 고즈넉합니다
강아지 지블스와 함께
가방 하나 달랑 들고 떠나는 리처드를
문 앞에서 바라보는 딸 올리비아에게
엄마가 잘 돌봐줄 거라고 말하자
'제 스스로 돌볼 수 있어요'
'그건 의심할 바가 없지'
그렇게 아빠와 딸은 작별합니다
차를 타고 떠나는 아빠 리처드와
웃으며 배웅하는 딸
울음을 눌러 참는 딸
그러다 우는 딸 올리비아
아빠와 딸이 작별하는 장면에서
콧날 시큰 가슴 먹먹해집니다
울며 운전하는 리처드의 모습을
딸 올리비아 대신 조수석에서 지켜보는
강아지 지블스의 눈망울이 애틋합니다
갈림길에서 멈추어 잠시 머뭇거리다가
'미안하다 지블스' 나직이 중얼거리고는
길이 아닌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별똥별처럼
별들이 무수히 반짝이는 밤하늘로
리처드는 휘리릭 날아갑니다
리처드의 죽음을
반짝이는 별 하늘로 대신하며
엔딩이 노력한 영화 '수상한 교수'
나는 수상한 교수가 아닌
죽음 앞에서 흔들리는
매력적인 한 남자 조니 뎁을 보았고
죽음에 대처하는 인간의 연약함과 함께
죽어서도 여전히 밝게 빛나는
별 떨기 같은 인간의 영혼을 봅니다
삶과 죽음이라는 갈림길은
피해 갈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이고
운명 앞에 선 인간은 한없이 나약하지만
나약하므로 또한 강해질 수 있는 것임을
새삼 되새겨보는 시간이 되었죠
비록 이생망일지라도 한 번뿐인 인생
그러므로 어설프고 서툴기만 하고
그리하여 흔들릴 수밖에 없는
인생이라는 순간의 거울을
다시 깊숙이 들여다보는
나른한 봄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