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다 952 겨울과 작별하며

쇤베르크 '정화된 밤'

by eunring

흐리디흐린 2월의 끝날

겨울이 시린 날개를 조용히 접고

계절의 매듭을 곱게 묶으며

작별인사를 건네는 2월의 마지막 날

쇤베르크의 '정화된 밤'을 듣습니다


겨울과 작별하기에

어울리는 음악입니다

정화된 마음으로

정화된 밤을 보낼 수 있으니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고

새로운 새 날과 해맑은 계절의 문을

힘차게 열어젖힐 수 있을 것 같아요


두 대의 바이올린과

두 대의 비올라

그리고 두 대의 첼로 연주로 듣는

아놀드 쇤베르크의 '정화된 밤'

음악으로 계절이 정화되는 느낌입니다


정화되기까지 필요한 번민과 사랑이

잔잔히 느리고 그윽하게

그러다 긴장감과 혼란을 거쳐

열정적으로 일렁이다가

섬세한 사랑의 달빛을 끌어안으며

썰물처럼 사라지는 듯~


'정화된 밤'은

달 밝은 숲 속을 배경으로

연인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음악으로 그려냈다고 해요


독일 시인 리하르트 데멜의 연작시집

'여인과 세계' 가운데 '두 사람'에서

영감을 받았답니다


쇤베르크의 회상에 따르면

'줄거리를 설명하지 않은 채

인간의 감정만을 단단히 그려낸 것이다

빈에서의 초연을 잊을 수 없다

휘파람 소리가 들리고

소란스럽다 못해 주먹다짐까지

덕분에 이 작품은 유명해질 수 있었다'


시의 내용은 이렇답니다

차가운 달빛 숲 속을 걸어가는

두 사람이 있어요

이미 다른 남자의 아이를 품고 있다는

여자의 고백을 남자는 사랑으로 보듬으며

아이를 받아들이겠다고 하는 거죠


'두 사람이 황량하고 스산한

숲을 거닐고 있다

달이 그들을 따라오고 있고

그들은 달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시작은 그렇습니다

황량하고 스산한 시작입니다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졌음을 고백하고

여자는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거죠


'고개를 들어보니 달이 뒤따른다

그녀의 얼굴에 빛이 새겨지기 시작한다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남자가 말합니다

낯선 이의 아이는 정화되어

자신의 아이로 태어날 거라고요

서로의 마음을 끌어안은 두 사람이

숭고하고 찬란한 밤을 함께 걸으며

피아니시모의 매우 여리고

섬세한 피날레로 멀어진다는

시와 사랑과 음악의 만남이

마치 겨울과 봄의 만남과도 같아요


겨울의 아이와도 같은

새 순이 돋아 오르는 계절

봄은 겨울의 아이를 사랑으로 품어

열정으로 찬란하게 꽃 피워내는 거니까요


새로운 계절 봄을 마중하기 위해

마음을 비우고 순수하게 정리하며

마음의 옷깃을 가지런히 여미는

정화된 순간이 필요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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