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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로하다 995 세상의 전부인 한 사람

영화 '소년시절의 너'

by eunring

주동우를 봅니다

머리를 소년처럼 깎은

'소년시절의 너' 영화 속

그녀의 슬픈 눈빛을 봅니다


어른이 되는 법은

아무도 안 가르쳐준다며

세상 어디에도 기댈 곳 없어

스스로 단단해져야 했던 녀가

묵음과 말없음표로 전하는

지독한 열병과도 같은

청춘의 고백을 듣습니다


이양천새를 봅니다

'소년시절의 너'인 소녀를 바라보고

'넌 계속 앞으로 걸어

네 바로 뒤에 내가 있을게'

소녀의 뒤에서 소녀를 지켜주는

그녀바라기 그를 봅니다


변변히 가진 것도 없고

세상 어디에도 의지할 곳 없던

한 소년에게는 그래도 지켜주고 싶은

한 소녀가 있습니다


'너만 잘 살 수 있다면

난 패자가 아닌 거야'

그래서 소년은 소녀에게

가장 좋은 결말을 주고 싶었던 거죠


고맙다고 말할 수 있고

내 세상의 전부라고 말하며

그림자 사랑으로 지키고 싶은

'소년시절의 너'가 있습니다


유일한 탈출구인 대학 입시를 앞두고

학교 폭력에 무참히 시달리다가

엉망진창 들쭉날쭉 머리가 잘린

첸니엔(주동우)의 머리를 밀어주며

자신의 머리도 밀어버리는 베이(이양천새)

두 사람의 아픔이 빗물처럼 고이고

두 사람의 우울이 빗줄기처럼 쏟아지는

영화 '소년시절의 너'를 봅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곁에 있다면

지켜주고 싶은 누군가가 있다면

암울하고 막막하고 거친 세상이라도

버티고 견뎌낼 수 있는 거죠


소녀는 말합니다

'가능하면 세상을 지키고 싶어'

소녀의 말에 소년은 말하죠

'넌 세상을 지켜

난 너를 지킬게'


부모에게 버려져

밑바닥 인생을 사는 소년 베이와

마음 따뜻한 우등생이지만

학교 폭력 피해자인 소녀 첸니엔

어디에도 기댈 곳 없는 두 사람은

서로를 의지하고 위로하며

서로를 지켜줍니다


첸니엔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베이의 그림자 사랑이

몇 발자국 뒤에서 그녀를 지켜주고

첸니엔 또한 서툴기만 한 베이를

마음으로 안아줍니다


첸니엔이 여 형사에게 물어요

'누가 나를 지켜줘요?

이런 세상에서 아이를 낳고 싶으세요?'

첸니엔의 질문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첸니엔과 베이 두 사람이 바로 옆방에서

심문을 받는 장면이 안쓰럽습니다

정 형사는 둘을 만나게 하지만

서로 모른다며 슬슬 알아가자는

두 사람의 쓸쓸함이 유리조각처럼

날카롭게 파고들어요


'넌 슬슬 걸어 난 뒤에 있을게'

그렇게 첸니엔 뒤에서

그림자처럼 그녀를 바라보며 지켜주던

순정소년 베이는 그녀를 위해 갇히고

체니엔은 대학수능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게 되지만

그들의 앞에 가로놓인 시간은

거침없이 아프게 쏟아지는

소란한 빗줄기의 시간입니다


정 형사(팡 인)가 축하한다고 첸니엔에게

이제 어른이 되었으니 자유롭냐며

베이의 사형선고 소식을 전하자

종이인형처럼 구겨지는

그녀의 뒷모습이 소리도 없이 아파요


둘 중 하나는 자유롭게 두라고

첸니엔이 몸부림치자

선고 소식은 거짓말이고

그녀가 자수하면 몇 년이지만

베이는 그렇지 않다는 정 형사의 말에

주저앉아 펑펑 우는 그녀가

눈물자욱보다 더 깊숙이 서럽습니다


면회를 하며 대사도 없이

슬프게 웃는 두 사람의 모습을

소리 죽여 번갈아 보여주는 장면이

아릿하게 가슴을 울리네요


말없이 눈빛으로 서로에게 말을 건네는

서러운 눈물 속 두 사람의 모습이

슬프고 안타깝습니다

울어서 안쓰럽고

울면서 또 웃으니 더 슬퍼요


영화 내내 가혹하고 민감한 현실을

어둡지만 결코 소란하지 않게

섬세하고 따뜻하게 보여주는

감성적인 연출이 돋보입니다


착한 학생과 조무래기 양아치

둘 다 자백시켰으니 진짜 형사가 되었다는

상사의 칭찬에도 웃을 수 없는

정 형사의 모습도 마음 짠합니다


그가 말했거든요

'어른이 되는 건 다이빙과도 같아

생각하지 말고 눈감고 뛰어드는 거야

강에는 모래도 있고

돌멩이와 조개도 있겠지만

그렇게 어른이 되는 거야'


'마음이 너무 편해져서

대입 마지막 시험을 끝낸 기분'이라는

첸니엔에게 베이가 물어요

작문 주제가 뭐였냐고

'20년 후에게 쓰는 편지'라는

첸니엔의 대답에 머무르는

연둣빛 희망의 빛을 봅니다


두렵냐고 서로에게 묻고

이제 괜찮아졌다고 대답하며

'넌 그때로 돌아간다면 같은 선택을 할 거니?'

천니옌의 물음에

베이의 단호박 대답이 든든합니다

'인생에 가정법은 없어

그리고 또 하나

우리 이야기에 가정법은 싫어'


엔딩 크레디트가 흐른

영어학습센터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그녀의 모습이 덧붙여집니다

'This is our playground'


차분하게 성숙한 모습으로

잔뜩 주눅이 든 여학생을 다독이듯

나란히 걸어가는 그녀를

저만큼 뒤 따르는 그의 모습으로

영화는 따스하게 마침표를 찍습니다

마침표가 아니라 말줄임표군요


말을 줄이는 대신

배우들의 연기로 보여주는 영화

'소년시절의 너'

마음 아픈 영화지만

따뜻한 감동과 여운이

한참 오래 남을 것 같아요


첸니엔과 베이가 나란히

밝은 봄햇살 속을 걸어가는

참 잘 어울리는 두 사람의 앞날을

상상해 보며 혼자 웃어요


어른이 되기 위해

매서운 꽃샘추위와도 같은

모진 아픔의 시간을 겪는

세상 모든 청춘들의 시간을

힘차게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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