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10 달걀처럼 떼구루루
커피 친구 구운 달걀
어제 저녁 지는 해가
유난히 크고 동그란 주황빛이라
한참 쳐다보는데 느닷없이
'서니 사이드 업'이 생각났어요
달걀 프라이를 할 때
한쪽 면만 살짝 익히면
터지지 않은 달걀노른자가
동그랗게 떠오르는 해처럼 보여서
붙여진 이름이죠
'서니 사이드 업'은 보기 좋고
예쁘긴 하지만 완숙파인 나는
노른자까지 앞뒤로 다 익힌
달걀 프라이를 좋아합니다
늦잠꾸러기인 내 눈에 떠오르는 해보다는
곱게 지는 해가 더 자주 보이니
'서니 사이드 다운'이라고 해야 하나 싶어
고개 갸웃거리며 혼자 실실 웃다 보니
달걀의 추억 하나가 떠오릅니다
말없는 순둥이지만
내 맘에 안 들면 완전 입 꾹 다물고
혼자 은근 고집을 부리던 나는
어른들 얘기로는 어릴 적에
저만큼 서라는 잔소리 한마디 안 듣고
있는 듯 없는 듯 자랐답니다
딸바보 아버지에 엄마는 워낙 말이 없고
할머니와 고모는 완전 내 편이었으니
누가 뭐랄 사람 하나 없이
쪼매난 내 세상이었죠
꼬물거리며 저 혼자 잘 놀고
부지런하지는 않아도 느릿느릿
저 혼자 할 일은 웬만큼 해서
그냥 냅두면 되는 꼬맹이였던 거죠
어느 날 쪼매난 마음에
무어 그리 속이 상했던지
삶은 달걀 하나 손에 들고 잠시
집 나간 기억이 떠올라
푸훗 웃음 터집니다
완전식품 달걀 하나 들고
완전 가출이라도 꿈꾸었을까요?
어렴풋이 떠오르는
어릴 적 잠시 잠깐 가출의 기억은
동네에서 가까운 큰길 지나
시장 골목을 이리저리 헤매다가
해지기 전에 슬그머니 다시 원위치했던
두어 시간 정도의 어설픈 쓸쓸함인데요
달걀을 보면 문득
어린 날의 외로움이 떠올라요
늘 다니던 큰길도 왠지 낯설고
시장 골목도 새삼 낯설기만 하던
적막감이 달걀처럼 떼구루루
마음의 골목을 헤집고 다닙니다
어쨌거나 나는
반숙보다 완숙을 좋아하고
삶은 달걀도 좋지만
방금 구워낸 따끈한 달걀이 더 좋아요
삶은 달걀보다 구운 달걀이
흰자는 탱글탱글 노른자는 더 고소해서
커피 친구로도 잘 어울려서 애용하는데
다이어트 간식으로도 좋다는군요
입이 심심하고 궁금할 때 먹으면 좋답니다
전기밥솥이나 압력솥
냄비나 에어프라이어로도
구운 달걀을 만들 수 있다는데요
살림 마트에서 구운 유정란 사다가
껍질 벗겨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려 먹으면
그런대로 괜찮습니다
번거로움을 좋아하지 않는
게으르미의 생존법이죠
오늘 커피 친구는
구운 달걀로 미리 찜해둡니다
감성 충만 커피 한 잔에
건강에 좋은 달걀 한 알이면
기분 좋은 하루 해가
'서니 사이드 업' 달걀 프라이처럼
동그랗게 떠오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