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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의 시간 09 돌아보지 않기로 해

우포늪의 추억

by eunring

내게는 산 아래 사는

감성 친구가 있어요

비가 오는데도 빗소리 밟아

뒷산에 가는 친구가 있어요

감성 친구 곁에 감성 친구죠


'비 와서 나갔다

빗소리랑 나무에 맺힌 이슬
진달래 생강꽃 비에 젖어 운치 있다'며

친구가 사진 한 장을 보내줍니다

톡 문자에 얹혀 오는 사진은

우산을 안 써도 비에 젖지 않아요


'여기 둘레길이 우포 생명길~
두어 시간 반 소요된다
시간 어중간할 때 걷던 길'이라고

비에 젖은 뒷산 사진 대신

해맑은 봄날의 우포늪 사진을 건네주며

산 아래 친구가 덧붙이는 소리는
'완전 봄날~
왕버들 곱다'

나직한 추억의 소리입니다

이미 그곳을 떠나왔으니까요


산 아래 친구가 거기 살 때

오래전 겨울 우포늪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봄날의 해사한 우포늪은 사진으로만 만나고

한겨울이라 적막하고 울적해 보이는

회색의 늪으로 기억에 남아 있어요
고즈넉하고 울적한 이미지로 남은 건

겨울이라는 계절 탓이기도 하지만
그 순간 내 마음이 울적해서였겠죠


친구가 보내온 사진으로 만나는

봄날의 우포늪이 잔잔히 곱습니다

저기 수풀 속 어디쯤 해맑은 수선화도

방실방실 피어나 웃고 있겠죠


낙동강의 물줄기인 우포늪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자연습지랍니다

우포늪 목포늪 사지포 쪽지벌

네 개의 늪으로 이루어진

국제적인 습지라고 해요


가시연꽃 생이가래 부들 줄 골풀 창포

논병아리 노랑부리저어새

청둥오리 큰고니 등이

정겹게 자리를 잡고 산다는 그곳에

친구의 지난 시간들도 잔잔히 머물러 있겠죠


돌아보면 어김없이 그립고

돌아보면 아쉬움도 스미지만

친구와 나는 돌아보지 않기로

톡 문자로 약속했어요


봄날 새순처럼 파릇파릇

앞을 보며 살자고 했어요

돌아보면 밀려오는 안타까움에

지금 이 순간의 봄빛을 놓치지 말자고

'돌아보지 않기로 해 친구야~'

그렇게 마음의 새끼손가락 걸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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