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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의 시간 17 애틋하게 지는 꽃

지는 해가 곱듯이

by eunring

봄날 피어나는 꽃들이

티 없이 맑고 유난히 아름답지만

고운 만큼 슬퍼 보이는 까닭은

지난겨울의 모진 추위를

견디고 감당하며 죽을힘 다해

피어났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일까요

짧은 며칠의 만남을 위해

피어난 봄꽃 한 송이마다 간직한

아픔의 무게와 깊이가 보이고 느껴져

단 하나의 꽃망울도 허투루 지나치지 못하고

애틋한 눈길이 저절로 머무릅니다


인생의 순간들도

어느 한순간 허튼 순간이 아니듯

피어나 웃고 있는 꽃들도 그러하겠죠

숨죽이며 견딘 순간도 애잔하고

아프게 피어나 곱게 머무르는

잠깐의 시간도 애처로이 눈부십니다


참고 견디고 감당한 무게에 지쳐

한가닥 실바람에도 스르르

날개를 접으며 떨어지는

작별의 순간까지도

애틋하게 곱습니다


저마다의 눈물겨운 사연을 안고

애처롭게 피어나 눈부시게 머무르다

떨어지는 순간까지도 이리 고우니

그것으로 되었습니다

오래 피어야 꽃인가요


잠시 잠깐 피었다

바람에 날려 떨어져도

무수히 많은 사연을 간직한

인생의 눈길과 만나 친해졌으니

짧다고 부질없는 건 아니겠죠

그나마 피어보지도 못한

꽃들도 있으니까요


오늘 산책 길에는

피어난 꽃들과도

다정히 눈인사 나누고

떨어져 누운 꽃들에게도

애썼다고 위로의 눈길 보내고

피어보지도 못한 꽃들을 생각하며

잠시 서성이고 머무르다가

안타까운 사랑의 인사 건네야겠어요


지는 해가 아름답듯이

지는 꽃도 아름답고

피어난 꽃들이 곱듯이

피어나지 못한 꽃들도 고와요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아예 없는 건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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