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16 매화를 찍다
커피 친구 매화
보라 커피 한 잔 사러
오늘은 조금 걸었습니다
아침 햇살 눈부시고 바람도 순해서
산책 삼아 한 바퀴 돌며
동네 꽃들이랑 눈도 맞추려고요
한 바퀴 돌다가
어리디어린 매화나무를 만났습니다
세상모르는 고운 얼굴로
해맑게 웃고 있는 매화꽃을
발걸음 멈추고 찍어봅니다
산 아래 친구 동네 매화나무는
백 년도 훨씬 넘은 고목이라
가지마다 무수히 피어난 매화꽃도
송이송이 구름송이 같은데
울 동네 매화는 애기 나무라
송이송이 수줍은 미소가
순둥순둥해요
'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엔 눈물도 많다'라는
진도 아리랑을 즐겨 부르시던
할머니 목소리가 문득 떠오릅니다
영화 '서편제' 덕분에 널리 알려진
진도아리랑은 남도지방의 민요랍니다
진도는 동백꽃이 많이 피고 풍광이 아름다워
부녀자들이 밭을 매거나 쉬면서
청승스럽고 멋들어지게 아리랑을 불렀다고 해요
'연자색 물색은 나날이 변해도
너와 나의 먹은 마음 변치를 말자
야산 중턱에 진달래꽃은
한 송이만 피어도 모두 따라 핀다'는
노랫말이 연분홍 봄날이랑 잘 어울립니다
무엇이든 그냥 아무거나
막 그립고 그리워지는 이 봄날
울 동네는 산 동네가 아니라
진달래 대신 매화가 줄지어 피어납니다
목련은 며칠 사이 수줍음을 내던지고
활짝 피어나 마구 흐드러지고
어머나~ 부지런한 라일락도
보랏빛 미소를 머금기 시작했어요
목련은 너무 피어 감당하기 버겁고
벚꽃은 아직이고 라일락은 너무 이르니
커피 한 잔 사러 나선 길에 만난
애기 매화꽃이 오늘의 커피 친구입니다
커피는 적당히 식어 마시기 딱 좋고
매화의 어리고 순한 얼굴이 배시시 웃음 머금고
말없이 커피 친구가 되어 주니 고맙고
'세월은 흐르기가 시냇물 같고
인생은 바람결 같다'라시던
오래전 할머니의 구성진 노랫소리가
귓전에 잔잔히 머무르니
아련한 봄날이 매화 향기에 젖어
더욱 고요히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