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21 봄비 촉촉 자매들의 시간
영화 '작은 아씨들' 1994
한 잔의 카페라떼를 더 마시며
부드러운 우유 거품으로
차분히 내리는 봄비에 젖는
마음을 달래 봅니다
올망졸망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닝빵도 한 봉지 함께 합니다
한 봉지에 여섯 개 들어있는
모닝빵을 볼 때마다
도란도란 자매들 같다는 생각을 하며
혼자 웃곤 해요
작고 동그란 모닝빵을 닮고
예쁜 잔에 담긴 한 잔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카페라떼 같은
'작은 아씨들' 영화를 오랜만에 봅니다
전자레인지에 20초 돌린
따뜻하고 부드러운 모닝빵 한 개와
보들보들 포근한 카페라떼
그리고 추억 깊은 '작은 아씨들'
1994년 위노나 라이더가 나오는 영화로
봄비 내리는 주말 오후를 보내고 있어요
어릴 적에 올컷의 '작은 아씨들'을 읽으며
마음이 울컥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차분하고 예쁜 맏딸 메그
활달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둘째 조
수줍음을 많이 타는 조용하고 헌신적인 베스
멋 내기를 좋아하는 사랑스러운 막내 에이미
각기 다른 꿈을 지닌 자매들이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가 재미나지만
자매들 중 하나가 먼저 떠나서
어리고 철없는 마음에
왜 하나를 먼저 보내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따뜻하고 감동적이면서도
왠지 슬퍼서 '작은 아씨들' 영화를
선뜻 챙겨보지 못했죠
내게도 자매들이 여럿 있고
하나가 먼저 지상에서의 소풍을 끝내고
하늘의 별꽃으로 피어났거든요
'신이 나를 부르시는 거라면
아무도 막지 못할 거'라는
베스의 안타까운 죽음 앞에서
오늘도 나는 습관처럼 눈물 찔끔거립니다
'난 외로운 게 싫어
그래서 먼저 떠나는 거야'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제 펑펑 울지는 않는다는 거죠
베스가 말해요
'왜 다들 먼 곳으로 가고 싶어 할까
나는 집에 있는 게 좋은데
내가 먼저 떠나게 됐네
천국에 있어도 언니가 그리울 거야'
바람 몰아쳐 들어오는 창문을 닫고
가만히 선 채로 창밖을 바라보는
조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옵니다
눈 감은 베스 곁에 나란히 눕는
조의 아픔이 그대로 내 것이 됩니다
베스의 침대와 피아노와
인형들 위에 빨간 장미 꽃잎을 뿌리며
베스와 작별하는 가족들의 모습이
단출해서 더 애틋합니다
메그 언니는 출산 임박이라
고모할머니 따라 유럽으로 떠난 에이미는
병이 난 고모할머니의 곁을 지켜야 해서
에이미를 보내는 자리에 오지 못하죠
이제 다 함께 모일 수 없을 거라는
조의 슬픔이 안타깝습니다
베스의 이름이 수 놓인 상자 속에는
추억의 잡동사니들이 한가득 들어있어요
눈물 흘리며 들여다보는 조의 슬픔이
봄비처럼 젖어들어요
조는 펜을 들고 자신의 경험이 녹아들어 간
자매들의 이야기를 써 내려갑니다
'소설-조세핀 마치 지음'
원고를 묶어 붉은 꽃 한 송이를 꽂아
휘트먼의 시를 읽으며 마음을 나누고
조가 삶에서 우러난 글을 쓰기를 바라던
가난하지만 마음 따뜻한 친구
프레드릭에게 보냅니다
아들과 딸 쌍둥이를 낳은 메그 언니 집에서
밀가루 반죽을 하다가 아기들을 돌보는데
어릴 적 친구 로리가 찾아와서는
아내가 된 에이미를 소개하죠
결혼보다 끈끈한 자매 사이라며
한때 조를 사랑하고 조에게 청혼했던
로리와 결혼한 것에 대해 묻는 에이미에게
한 가족이 되어 좋다며
늘 가까운 곳에서 살자고 합니다
고모할머니의 쓸모없이 크기만 한
플럼필드 큰집을 물려받은 조에게
프레드릭 베어의 소포가 도착해요
'작은 아씨들'이라는 제목이 붙은 조의 책이죠
폭스인가 베어인가
외국인 신사가 다녀갔다는 말에
우산을 놓고 간 프레드릭을 뒤쫓아가는데
당신 책 속에 당신 마음이 들어있다며
서부로 교수가 되어 가게 되었다고
프레드릭이 작별의 인사를 건넵니다
조와 로리가 결혼할 줄 오해하고
어깨 축 늘어진 프레드릭의 모습이 안쓰러워요
고모할머니에게 물려받은 플럼필드를
학교로 만들고 싶다며
가르칠 사람이 필요하다고
제발 멀리 가지 말라는 조에게
손이 비어 줄 게 없다는 프레드릭은
가난하지만 셰익스피어의 책을 아끼는
속 깊고 멋진 사람이죠
뉴욕에 있을 때 경험을 선물하겠다고
조에게 오페라를 보러 가자고 청하고는
드레스 걱정은 필요 없다며
무대 뒤 옹색한 자리에서
비제의 오페라 '진주조개잡이'를 보았죠
여주인공 레일라가
연인 나디르를 만나는 장면을 이야기해주며
프레드릭은 조의 손을 잡고
노래의 가사를 들려줍니다
'당신이 내 마음을 열었고
깊고 향기롭던 그 밤
당신의 사랑스러운 목소리를
빼앗겨버린 내 마음과 함께 들어요
제발 내 마음을 받아줘요'
그렇게 사랑을 고백했었죠
가진 것 없다는 프레드릭의 손에
손깍지를 끼며 이제 비지 않았다고
웃는 조의 미소가 아름답습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에이미를 연기하는
1949년 '작은 아씨들'도 다시 보고 싶고
2019 '작은 아씨들'도 봐야겠어요
시얼사 로넌이 연기하는
조의 모습도 멋질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