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121 그립다는 것
예이츠 '쿨 호수의 야생 백조'
학생 시절 멋쟁이 국어 선생님이
칠판에 단아한 글씨로 예이츠의 시
'하늘나라의 옷감'을 적으시고
낭랑한 목소리로 읽어주시던 생각이 납니다
'금빛 은빛으로 수놓아진
하늘나라의 옷감이 내게 있다면
밤과 낮의 그 사이 어스름한 빛으로 된
푸르고 희미하고 어두운 빛깔의 옷감이 있다면
그대 발아래 깔아드리고 싶으나
나는 가난하여 가진 건 꿈 한 자락뿐
그대 발아래 내 꿈을 펼쳐 드리오니
사뿐히 밟고 오소서
꿈에 오는 이여'
아일랜드의 시인이며 극작가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가
사랑하는 이의 발아래 깔아주고 싶었던
하늘나라의 옷감은 곱고도 낭만적입니다
소월 시인의 '진달래꽃'
사뿐히 즈려 밟기의 모티브가 된 시랍니다
30여 년 동안 그의 뮤즈가 되어준
아일랜드의 독립운동가이고 배우인
모드 곤(Maud Gonne)은
십여 년 동안 예이츠의 청혼을 수차례 거절했으나
그의 사색과 시 시계의 깊이를 더해 주고
삶과 시에 영향과 영감을 주었답니다
아마도 그녀의 발아래 깔아주고 싶었던
하늘나라의 옷감인가 봅니다
두 사람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으나
우정은 죽을 때까지 이어졌다고 해요
예이츠는 자서전에서
그녀에 대한 첫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답니다
'그녀는 고전에 나오는 봄의 화신 같았다
얼굴은 빛을 받은 사과꽃처럼 빛났고
처음 만난 그날 창문을 통해 보이는
꽃 무더기 옆에 그녀가 서 있었던 기억이 난다'
쿨 호수의 야생 백조가
첫사랑의 설렘을 되살려 주었을까요?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안타까움과
이루지 못한 첫사랑을 향한 그리움을
우아한 날갯짓으로 건네준 걸까요?
쉰아홉 마리 백조들이 있고
처음 숫자를 세던 때로부터
열아홉 번째 가을이 오고
백조들은 물갈퀴로 차가운 물살을 가르며
하늘로 날아오른다고 노래합니다
'그런데 지금 백조들은
고요히 물 위를 떠돌고 있지
신비롭고 아름다우나
어느 수초 사이에서 그들은 둥지를 틀고
낯선 호숫가 가장자리나 물가에서
누군가의 눈에 기쁨을 주게 되겠지
내가 어느 날 문득 깨어나
그들이 날아올라
사라져 버린 것을 알았을 때'
허무한 느낌으로 소리도 없이
그렇게 끝나는 예이츠의 시
'쿨 호수의 야생 백조'가
그리움의 날갯짓으로
눈에 들어옵니다
예이츠는 화가의 집안에서 태어나
미술을 공부하다가 시를 쓰게 되었답니다
그래서일까요
'쿨 호수의 야생 백조'를 읽다 보면
그리움이 잔잔히 물결 지는
고즈넉한 호수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사랑했으나 이룰 수 없었던 사랑이
짙푸른 그리움의 잔물결 되어
마음 안으로 밀려들어요
어느 날 문득 깨어났을 때
백조처럼 날아올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없을
그 모든 것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텅 빈 호수의 마음이 되거든요
이루지 못한 사랑뿐 아니라
내 것이라 생각하는 그 어떤 것도
어느 날 문득
백조처럼 날아올라 사라질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