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209 아라베스크

슈만 '피아노를 위한 아라베스크 C장조 Op.18'

by eunring

금방이라도 ~

투명한 빗방울 떨굴 것처럼

흐리게 내려앉은 하늘을 내다보며

슈만의 아라베스크를 듣습니다


비슷한 듯 조금씩 다르게 흘러가는

하루하루가 모여 인생의 무늬를 이뤄가고

하루라는 덩굴풀 잎사귀들이

손잡고 이어가는 인생의 무늬가

아라베스크를 닮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요


아라베스크는

아라비아에서 시작된 무늬랍니다

기하학적인 직선 무늬나 덩굴풀 무늬 등을

곱게 이어서 배열한 것으로

벽의 장식이나 공예품에 많이 쓰이는

당초무늬 중의 하나래요


당초무늬는

줄기나 덩굴이나 잎사귀들이

얽히고설킨 식물 문양을 이르는 말이랍니다

연속적인 문양으로 이어지는데

주제가 되는 식물에 따라

인동당초 포도당초 모란당초 등이 있고

중국에서는 만초문이라고 부른대요


발레에도 아라베스크라는 포즈가 있죠

한쪽 다리로 서서 다른 쪽 다리를

그 다리의 뒤로 직각이 되게 곧게 뻗은

기본자세를 말한답니다

손끝에서 발끝까지 가장 길고 아름답고

우아한 수평선 포즈가 된다는군요


음악에도 아라베스크가 있는데요

슈만의 아라베스크는

섬세하고 화려한 장식적 요소가

우아한 아라베스크 문양처럼

유기적으로 부드럽게 이어진답니다


밝고 동글동글 단순한 듯하면서도

사랑스럽고 우아한 아름다움이

조랑조랑 이어진 꽃묶음처럼 향기롭게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 같아요


초록빛 덩굴풀 잎사귀들이

정답게 어깨동무를 하고

살랑이는 바람 따라 나풀대는 모습처럼

사랑스러움이 그대로 전해져

한 포기 덩굴풀이 된 것처럼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슈만이 아라베스크를 작곡할 무렵

사랑의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해요

스승의 딸 클라라를 사랑했으나

스승의 반대가 극심했답니다

아라베스크가 완성된 이듬해 결혼하기까지

그가 겪었던 사랑의 고뇌가 담겨

아름다운 물결무늬로 찰랑이는 듯해요

사랑은 아프지만 그 열매는 달콤하다고

속삭이는 것 같기도 해서 웃음이 맺힙니다


비엔나의 모든 여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가 되고 싶어 했다는

슈만은 법률을 공부하다가

스무 살에 비로소 음악공부를 시작했는데

피아노를 연습하다가 손가락을 다쳐

작곡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죠


슈만 스스로 숙녀들을 위한

섬세한 작품이라고 말했듯이

그의 아라베스크는

아라비아풍의 무늬를 닮은

화려하고 섬세한 장식음으로 이어져

유려하고 환상적이면서도

우아하게 나풀대는 나비 수국처럼

사랑스럽습니다

드뷔시의 '두 개의 아라베스크'도

이어서 들어봐야겠어요

몽환적인 아라베스크가

소나기 머금고 있는 흐린 오후에

잘 어울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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