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234 그리움의 역사

영화 '사랑의 역사'

by eunring

'사랑의 역사'라고 쓰고

'그리움의 역사'라 읽습니다

니콜 크라우스의 소설 '사랑의 역사'를

영화로 만들었답니다


'알마 너를 다시 만나기 위해

내 이야기는 끝이 없어야 '

전쟁으로 이루어질 수 없었던

애절한 첫사랑 이야기를

글로 쓰고 또 영화로 만든 것이죠


이 세상이 글로 쓰여졌으면 좋겠다고

그렇지 않으면 너무 외롭고 슬프다는

레오에게 알마가 말합니다

'그럼 네가 아는 걸 써'

내가 제일 잘 아는 건 바로 너니까'

그래서 유대인 레오는 사랑하는 그녀

알마를 위해 '사랑의 역사'를 씁니다


'옛날에 한 소년이 있었고

그는 한 소녀를 사랑했으며

그녀의 웃음은 소년이 평생에 걸쳐

답하고 싶은 질문이었다'


사랑하는 여자도 내 여자가 아니고

아들도 내 아들이라 부르지 못하고

자신의 원고도 자신의 것이라 말하지 못하는

괴팍하고 외로운 노인 레오의 쓸쓸함과

우연히 '사랑의 역사'를 읽으며 감동한

열네 살 소녀 알마의 만남이

그나마 초록으로 풋풋해서 다행입니다


아빠를 여읜 뉴욕 소녀 알마는

상심한 엄마 로사를 위해

남자 친구가 생기기를 바랍니다

레오의 친구인 즈비가 칠레에서

스페인어로 출간한 '사랑의 역사'를 읽은

알마의 아빠가 소설의 주인공 이름을

마에게 붙여주었죠

엄마 로사에게 부쳐온 편지와

'사랑의 역사' 원고를 읽게 되면서

레오와의 인연이 시작됩니다


2차 대전이 일어나

알마와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레오는

그녀를 주인공으로'사랑의 역사'를 써서

한 챕터씩 그녀에게 보냅니다

전쟁 중에 레오는 뉴욕으로 떠나며

마지막 원고를 친구 즈비에게 맡겼는데

칠레로 간 친구 즈비는

레오의 원고를 자신의 이름으로 출간하죠


몇 년 후 뉴욕에서

레오와 엘마는 다시 만나지만

알마는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목숨처럼 사랑했던 첫사랑

알마에게 외면당한 레오는

자신이 쓴 원고 '사랑의 역사'도 잃어버린 채

뉴욕의 변두리에서 지루한 삶을 이어가게 되죠

알마의 죽음을 앞두고서야

비로소 만나는 두 사람의 모습이

한없이 애처롭습니다


알마는 레오에게 부탁해요

'만약 내가 죽거든

두 가지 약속을 지켜줘

혼자 지내지 말고

아이작에게 절대 아빠라고 하지 마'


죽음이 다가오는 알마의 병실에서

레오와 알마는 슬픈 눈빛을 주고받으며

손가락으로 서로의 마음을 건넵니다

레오가 부쳐준 소설 '사랑의 역사'를

알마는 밤마다 아들 아이작에게 읽어줬답니다

레오는 알마를 위해 소설을 끝냈으나

전쟁 중이라 우체국이 문을 닫아

'사랑의 역사'를 뉴욕의 알마에게 보내달라고

친구 즈비에게 부탁했는데

즈비가 자신의 이름으로 출간했던 거죠

즈비의 아내는 원고를 물에 씻어버리고

태풍으로 원고를 잃었다고 거짓말을 해요


물난리로 원고가 훼손되었다는

즈비의 답장에 레오는 중얼거립니다

'어떤 홍수도 사랑의 역사는 지울 수 없고

결말은 마음속에 있으니 다음에 알려줄게'


엘마에게서 태어난 자신의 아들

아이작에게 아빠라는 걸 알리고 싶은 레오는

'사랑하는 아들아 내 삶을 너에게 보낸다'

자신의 이야기를 쓴 '많은 것들을 위한 일들'원고를

유명 작가가 된 아들 아이작에게 보냅니다


알마를 위해 쓴 '사랑의 역사'

그 잔해 속에서 다시

'한 소년이 있었다'로 시작하는

자신의 삶이 담긴 원고를 아들에게 보내지만

얼마 후 아들 아이작의 죽음이 전해지죠


다시 꽃을 들고 알마의 병실을 찾아가는데

알마 역시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알마의 빈자리에 꽃을 떨구고

하염없이 빗속을 걸어가는

레오의 느린 모습이 슬픔으로 얼룩집니다


검은 정장을 사는 레오의 모습이 측은해요

몸에 맞지 않는 큼직한 정장을 걸치고

아들이지만 아들이라 부를 수 없었던

아들 아이작의 장례식 근처를 서성이다가

바로 곁에 있는 알마의 무덤 앞에

풀썩 주저앉아 울어요


아이작의 장례식 후

자신이 보냈던 원고를 찾으러 갔다가

레오는 사진 액자 하나를 보게 되죠

커다란 나무 뒤에서 입 맞추는 알마와 레오

두 사람의 모습이 흑백으로 담겨

그들이 사랑하던 시절이 소중히 남아 있어요


알마와의 이야기는 친구 즈비에게 뺏기고

아들과의 이야기는 아들 아이작에게 뺏긴 그는

내 아들이 내가 아빠라는 걸 알았으니 되었다고

같은 이야기로 아들 아이작과 재회했다고 웃으며

기차를 타고 시골집으로 떠납니다


시골집으로 돌아온 그는

문 아래에 남아 있는

소녀 알마의 메모를 봅니다

'사랑의 역사 마지막 부분을 가지고 있으니

연락 주세요 알마'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은 여자 알마에 대해 물으며 꽃무늬 드레스를 입고 나가겠다는 소녀 알마와

센트럴파크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레오는

긴 바지단을 줄여 멋지게 차려 입고

은빛 머리카락을 곱게 빗어 넘깁니다


공원 벤치에서 기다리는 레오에게

꽃무늬 옷을 나풀대며 소녀 알마가 다가갑니다

'아이작의 아빠이고 알마의 연인 레오'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레오가

그 모든 것에서 살아남았다고 말하자

그럴 가치가 있었냐고 물으며

원고를 건네는 소녀 알마에게

레오가 물어요

'네 이름이 알마?'

'말하자면 긴 얘기'라고 알마는 웃어요


레오와 소녀 알마 두 사람 뒤로

초록나무들과 건물들이 점점 커지며

영화는 애틋하게 끝이 나지만

레오의 '사랑의 역사'는

그의 기억 속에서 그리움의 강물이 되어

흐르고 또 흘러 저 세상 알마에게 닿겠죠

그녀의 웃음은 '한 소년이

평생에 걸쳐 답하고 싶은 질문'이었으니까요


알마의 죽음이 다가서는 병실에서

서로를 기억하는 두 사람의 손이

아련한 설렘과 떨림으로

안타깝게 다시 만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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