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242 깊고 푸른 감성의 빛

에릭 사티 '짐노페디'

by eunring

우아한 피아노 연주로도 물론 좋지만

어쩌다 클래식 기타 버전으로 듣는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가 아련합니다

깊고 푸른 고독감마저도

감미로운 느낌으로 젖어들어요


여섯 살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읜 사티는

외로운 청소년기를 보냈다고 하죠

새어머니 곁에서도 음악원에서도 군대에서도 부적응아였던 사티는 세상살이에서도

늘 외딴섬 한 조각처럼 떨어져 있었다고 해요


가난과 친구 하며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는 그는

연주회에서 청중들에게

음악에 절대 집중하지 말고 무시하라는

엉뚱한 주문을 했다는군요

물론 그 주문이 통할 리는 없었답니다


열두 벌의 회색 벨벳 양복을 준비해 두고

한 벌을 줄기차게 입다가 낡으면

다른 한 벌을 입었다는

괴짜다운 일화도 전해집니다


에릭 사티의 대표 작품으로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3곡의 짐노페디(Gymnopedies)'는

화려하게 포장하지 않은 단순함과

단조롭고 느릿한 차분함이

신비로운 푸른 빚으로

마음에 스며듭니다


음표가 많지 않고 짧고 간결한 그의 음악을

가구처럼 그냥 거기 있는 음악이라고 해서

가구 음악이라 부른다니 재미납니다

있는 듯 없는 듯 가구처럼 다만 거기 있을 뿐

조용히 있어서 편안한 느낌을 주는

가구를 닮아서일까요?

벽장 음악이라는 별명도 있어요


가구나 벽장이나 그냥 거기 있을

존재감 뽐내지 않고 소란스럽지 않으니

절대 고독을 그려내는 그의 음악과

잘 어울리는 별칭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조용하고 편안하고 신비로운 그의 음악은

명상음악이니 심리치료에도 많이 쓰인답니다


여유롭고 순수한 감성의 빛으로 반짝이는

'짐노페디'는 시인이며 친구였던

파트리스 콩타민 드 라투르의 시

"오래된 것들'의 시구

'짐노페디아와 사라방드를 뒤섞어 춤추네'

그리고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역사소설 '살람보'를 읽고

영감을 받아 작곡했다고 전해집니다


몽마르트르 언덕의 '검은 고양이' 카바레는

그림자 연극으로 유명했는데

당시의 카바레는 젊은 예술가들의 아지트로

시 낭송이나 음악 연주 연극이나 노래 등이

공연되는 문화공간이었대요


사티가 그림자 연극의 반주를 하던 시절에

작곡한 '3개의 짐노페디'에는

각각 다른 지시가 달렸답니다

1곡에는 느리고 비통하게

2곡에는 느리고 슬프게

3곡에는 느리고 장중하게

모두 느리면서 고통스럽고 슬프고 엄숙하면서도

차분하고 깊숙한 신비로움을 지닌 곡인 거죠


1곡 느리고 비통하게는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라는 문구와 함께

침대 광고 음악으로도 쓰였습니다

가구 음악이라는 별칭과 딱 들어맞아요


'짐노페디'는 그리스어로

'벌거벗은 소년들'이라는 뜻이랍니다

고대 그리스 축제에서

벌거벗은 소년들이 추는

춤을 뜻한다고도 해요


사티의 짐노페디는 화려한 장식이나

요란한 꾸밈을 하지 않은

자유롭고 단순한 음악이라는 의미겠죠

형식에 얽매이지 않으려 했던

그의 성향을 말해주는 듯해요


사티의 친구였던 시인 장 콕토는

이 곡을 듣고 '벌거벗은 음악'이라 평했답니다

7분 30초 정도의 짤막한 음악이 주는

감성의 빛은 짙푸름으로 눈부십니다


그렇긴 해요

새파란 하늘도 푸른 바다도

겉치레를 벗어던진 순수함으로

더욱 해맑게 눈부시고

그 위를 스치는 한 줄기 바람도

요란하게 꾸미지 않았지만

세월을 밀어내는 힘이

소리도 없이 강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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