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246 어차피 사라질 추억이라 해도
일본 영화 '양지의 그녀'
금싸라기처럼 눈부신 햇살과
봄날의 설렘 닮은 첫사랑이 만났어요
어차피 사라질 추억이라 해도
첫사랑은 눈 시리게 투명합니다
어느 눈부신 햇살 아래~로 시작하는
'첫 줄'이라는 제목의 노래가 생각나는
영화 '양지의 그녀'
눈부신 햇살 아래 반짝이는
우에노 주리의 엉뚱 발랄한 사랑스러움과
마츠모토 준의 풋풋한 소년미가 만나
장면마다 금빛 햇살이 머무르고
잔잔히 스며드는 슬픔까지도 눈부십니다
첫사랑의 설렘이 반짝이는
영화 '양지의 그녀'
중학생 시절의 서툴고 가슴 시린 첫사랑
마오(우에노 주리)를 업무 미팅 자리에서
다시 만난 고스케(마츠모토 준)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한 애틋함으로 다가서며
더욱 설레고 눈부신 사랑을 이어갑니다
비밀이 많은 그녀 마오의 생일은
전직 형사인 아빠가 길에서 그녀를 주워온 날이고
나이는 지능검사와 의사의 소견으로 추측~
마오라는 이름도 아빠가 지어준 이름이죠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엄마의 걱정이 복선처럼 깔립니다
어항의 금붕어들에게
비치 보이스 멤버들의 이름들을 붙여주는
마오의 표정이 맑고 예쁘기만 한데
마오의 머리카락이 술술 빠져 병원에 갔더니
심리적인 요인이라고 하죠
잃어버린 기억 속 상처 때문이라는데
회사에서 쓰러진 그녀는 에노시마로 갑니다
고양이 할머니 오시타(나츠키 마리)에게
어지럽고 눈부신 것도 수명 때문이냐고 묻자
네가 선택한 길이라고 오시타는 말하죠
곧 너라는 존재도 그동안의 기억도
함께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사라질 거라고 하는데
마오는 더 살고 싶다고 해요
마오와 눈이 마주치자
'아픈 거 날아가라'고 불쑥 말을 던지는
옆집 소년 슈는 맑은 영혼이라
마오의 아픔을 알아보는 모양입니다
'그래도 지금은 아직 아플 수 있어
다행'이라는 마오의 대답이 잔잔히 슬퍼요
고양이 목숨은 9개라는 속담은
질기고 집념이 강하다는 말이라는데
점점 시들어가는 마오의 직장 선배 신도가
고스케에게 끝까지 지켜봐 달라는 부탁과 함께
오쿠다 고스케라는 이름이 새겨진
낡은 부적을 건넵니다
에노시마에 데려다주던 날
마오가 차에 떨구었던 것이죠
따뜻하고 생선이 맛있는 곳에 가고 싶다며
추운 겨울이 지긋지긋하다는 마오에게
고스케는 신도에게 받은 부적을 내밀며 말해요
'내가 모르는 널 가르쳐줘'
'사실은 나' 마오가 진실을 말하려는 순간
이웃집 소년 슈의 비명이 들려옵니다
난간에서 떨어져 위험한 상황에
마오가 슈를 안고 떨어져 내려요
마오와 슈 둘 다 무사한데
고개 들어 고스케를 바라보는
마오의 눈빛이 아프게 흔들립니다
근사한 아침을 차려주고 사라진
마오를 찾아 에노시마로 가는 고스케도
마오가 차마 말하지 못한
그녀의 비밀을 짐작하고 있어요
고양이 할머니 오시타는 말하죠
'모든 게 서서히 잊히고
마오 없는 일상으로 돌아가게 될 거'라고
'인간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마오에게 말해주었지만
인간이 되어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고집을 부리며 떠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고스케는 바닷가로 달려갑니다
'오늘은 해가 늦게 지면 좋겠구나'
오시타의 중얼거림이 애틋합니다
마오에 대한 고스케의 기억이 조금이라도
천천히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니까요
소년 고스케가 바닷가에서
마오를 구해주었듯이
바닷가 그 자리에서 마오를 찾아내고는
'마오 네가 범인이지 브라이언 먹은'
고스케가 건네는 웃픈 물음에
미안~ 웃는 마오에게
고스케는 '자전거 탈까' 물어요
어차피 사라질 추억이라고 웃다가
의미 없는 일도 하는 게 인간이라며
마오는 고스케의 자전거 뒷자리에 오릅니다
마오의 모든 것들이 사라지듯이
하나둘 지워져 가는 추억들과 함께
시간의 고리가 닫힐 것 같다는
고스케의 안타까움이 손에 잡힐 듯해요
마지막 입맞춤으로
그들을 이어준 시간의 고리가 닫히고
두 사람을 이어준 인연의 매듭도 풀어집니다
'내 기억은 이미 너로 가득한데'라는 고스케에게
'다시 태어나도 고스케를 찾을 수 있을 거야
아직 8번이나 기회가 남았으니'
마오가 건네는 약속이 애틋합니다
'그날이 올 때까지 각자의 인생을 걸어가자'
마지막 입맞춤 끝에 그렁한 눈물방울을 매달고
서로의 표정이 웃기다며 울다 웃는
마오와 고스케의 작별이 슬프고 예뻐서
더욱 사랑스럽습니다
'도와주어 고맙다'는 마오의 글씨도 사라지고
마오와 함께 한 시간 속 고스케의 기억들도
새하얀 거짓말처럼 사라지지만
마오와 함께 들었던
비치 보이스의 밝고 경쾌한 노래
'Wouldn't It Be Nice'를 들으며
주르르 눈물 흘리는 고스케의 손등에는
여전히 사랑의 흔적이 남아 있어요
그들의 사랑을 말해주듯이
마오가 좋아했던 노래
'Wouldn't It Be Nice'의 가사가
잔잔히 흐릅니다
고스케와 마오의 데이트 장면에서도
설렘을 안고 흘러나왔던 노래죠
결혼하기에는 아직 어린 연인이
결혼하고 싶은 마음에
어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라는 노랫말이
마오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우리 나이가 더 많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럼 더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데
우리가 함께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가 태어난 이 세상에서 말이죠'
우에노 주리처럼 사랑스럽고
마츠모토 준처럼 풋풋한 영화의 장면들이
햇살 눈부실 때 문득 떠오를 것 같아요
그 누구에게든 첫사랑은
가슴 시리게 아름답고
금빛 햇살처럼 눈부신 기억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