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253 여름 나그네
슈베르트 '밤 인사'
뜨거운 여름 한복판에서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듣습니다
정처 없이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맘껏 쏘댕기는 여름 나그네가 되고 싶으나
그럴 수 없는 이 여름의 막막함을
감미롭고 애절하고 가슴 시린
슈베르트의 음악으로 달래 봅니다
사랑을 잃고 희망까지 놓아버린 젊은이가
눈보라 치는 겨울 한복판에서
쓸쓸히 방랑길에 오르는 이야기죠
정처 없이 방랑하며 겪는 쓰라린 심정이 담긴
시리고 어둡고 울적한 노래들이지만
그만큼 차디찬 여운이 깊습니다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의
첫 번째 곡은 'Gute Nacht'
잘 자라는 밤 인사 안녕히~인데요
고무신 거꾸로 신은 옛 연인의
집 문에 안녕히~라고 적어두고
겨울 나그네가 되어 먼 길을 떠나는
한 젊은이의 모습이
쓸쓸하고 아름답게 그려집니다
이별의 슬픔과 절망과 고독이
서늘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제1곡 '밤 인사'의
노랫말이 애절합니다
'가야 할 길조차도 떠날 시간마저도
스스로 선택할 수 없으나
그래도 깊은 어둠 속에서
나 홀로 길을 떠나야만 하지
한 자락 달그림자를 길동무 삼아
새하얀 눈 쌓인 들판 위로
들짐승의 발자국을 따라가네'
이방인으로 왔다가
이방인으로 떠나가는 그는
사랑의 설렘과 기쁨을 이미 알고 있으므로
차디찬 이별이 더욱 쓰라리게 아프겠죠
'사랑은 방랑을 좋아해
여기저기 정처 없이 떠돌라고
신이 그렇게 만드신 거야'
그에게 향하던 그녀의 사랑이
방랑이라도 하듯이 그의 곁을 떠났으나
그는 그녀의 단잠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조용히 작별 인사를 남깁니다
'그대의 문 앞에
사랑하는 이여 안녕~이라 적어두고
그렇게 떠날 거야
그대의 단꿈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내 발자국 소리에 그대가 깨지 않도록
조용히 문에 적어둘 거야
그대는 알게 되겠지
내가 그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것을'
31세의 푸른 나이에 하늘 나그네가 된
가곡의 왕 슈베르트는 안타깝게도
죽기 1년 전에야 비로소 피아노를 마련했답니다
무지개처럼 떠오르는 음표들을 적을
오선지조차 맘껏 사기도 버거운
가난한 삶이었다고 해요
독일 시인 빌헬름 뮐러의 시에 곡을 붙인
'겨울 나그네'를 작곡하고 이듬해 세상을 떠나
하늘 나그네가 된 슈베르트는 지금도 여전히
적막한 달그림자 밟으며 방랑 중이겠지만
병이나 가난으로부터는 자유로워졌을 테죠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들으며
가만 눈을 감으면
창밖은 뜨거운 여름일지라도
마음은 눈보라 세차게 흩날리는
겨울 한복판을 발 시리게 서성이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