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280 천일의 열매
다큐 영화 '무문관'
'무문관'이라는 제목만 얼핏 보고는
무협 영화인 줄 알았습니다
부처님과 불자님들께
먼저 죄송 말씀드리고요
스님들의 천일 동안의 수행을 그린
다큐 영화라는 걸 알고는
잠시 망설입니다
불교에 대해 그다지 아는 바가 없으니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에 따르면
수박 겉핥기가 되고 말 테니까요
그러나 종교가 아닌
인간에 대한 이야기라니
눈이 가고 마음이 움직입니다
게다가 주변에 부처님을 사랑하는
친구님들이 있으니 모르는 건
나중에 물어보기로 합니다
다큐 영화 '무문관'에는
열한 명 스님들의 천일 동안의 수행 과정과
그 후 일 년 간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스님들의 수행에 방해가 되지 않게
울타리 바깥에서 멀리 찍은 영화랍니다
선방에서 행하는 3년간의 수행은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 아닐까 싶어요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고갱의 철학적인 그림도 떠오르고
'천일의 앤'도 생각나고
'천일 동안'이라는 노래도
느닷없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
무문관 수행이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문을 밖에서 자물쇠로 걸어 잠그고
하루 한 끼 공양을 하며 이루어지는
불교의 수행법이랍니다
굳게 걸어 잠근 문 안은 침묵뿐이지만
문 밖에서는 여전히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오가며
감성 충만한 사계절의 변화가 아름답게 담깁니다
적막한 산사에 새하얀 눈송이만
고요히 발자국 소리를 내는 순간을 지켜보며
나도 모르게 가만 숨죽이게 되고
별들의 반짝임이 유난히도 맑아 보여서
혼자 감탄하기도 합니다
감성적인 풍광을 배경으로
잔잔하고 담담한 시간의 흐름 속에 깃든
무거운 질문과 깊은 울림이
한 줄기 바람인 듯 마음을 두드리기도 해요
천일 동안의 수행을 마친 후
거침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며
나라는 존재가 나를 힘들게 한다고
나를 버려야 한다는 서담 스님의 말씀이
파도 자락처럼 귀에 선합니다
'끝이 났는데 돌아보니
3년이라는 세월이 안 보여요
나라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들게 하고
원하는 것이 많은지
나를 없애지 않고서는
이 공부에 들어가기가 참 힘들겠구나
나이는 들고 사람은 변하는데
변하지 않는 그 자리가 있어요
천일 전의 그 자리가 지금 자리와
변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이는 들고 사람은 변하는데
변하지 않는 자리가 있다'는
말씀이 먹먹하게 가슴을 울립니다
나를 없애야 한다는 건
분별심을 버려야 하는 것일까요?
나와 너 좋고 싫음 옳고 그름 따위를
헤아려서 판단하는 마음이
분별심이라고 들었습니다
분별심을 버리고 나야 비로소
고요한 마음이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서툴게 짐작을 해 봅니다
영화 말미에서
스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것도 모르고 살다 죽을 수는 없거든요
그것을 알고 가려고 힘든 수행의 길을 선택해서 가는 거라는 스님의 고즈넉한 뒷모습이
저녁 그림자처럼 긴 여운을 남깁니다
천일의 수행을 마치고
자물쇠로 세상과 단절되어 있던
선방의 문이 환짝 열리는 순간
문밖으로 나서며 눈부신 햇살을 맞이하는
스님들의 맑은 표정이 감동적입니다
굳게 잠긴 문 안에서
무엇을 찾아 나오신 걸까요?
다 버리고 나오셨으므로
그토록 환한 빛을 머금으신 걸까요?
가을이 오고 바람에 나뭇잎이 흩날릴 때
하루 중 가장 고즈넉한 시간을 빌어
다시 보고 싶은 영화로
마음의 책갈피에 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