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282 사랑의 비극

영화 '테스'

by eunring

철부지 학생 시절

토마스 하디의 소설

'더버빌 가의 테스'를 읽으며

어떤 생각을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아요


수업시간에 책상 밑에 '테스'를 펴놓고

몰래 읽다가 선생님께 혼이 났다는

친구님의 이야기가 떠올라 피식 웃다가

테스 형이 아닌 테스 누나

나스타샤 킨스키가 너무 예뻐서

아날로그 감성이 제대로 묻어나는

1979년 영국 영화 '테스'를 다시 봅니다


결말이 비극이라 중간까지만 보려고 했는데

소설 읽듯 보다 보니 또 끝까지 보고 말았어요

테스의 가난한 아버지가 우연히

귀족 가문의 핏줄임을 알게 되면서

테스의 비극이 시작됩니다


테스의 아버지는 어리고 예쁜 테스를

부자 친척집으로 보내 한몫 챙기려 하는데

사촌인 듯 사촌 아닌 나쁜 남자

알렉의 호의에 속아 넘어간

순진한 테스는 아이를 임신하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옵니다


미혼모의 고단하고 힘겨운 삶이

시작되자마자 아기는 일찍 죽고 말아요

아기가 죽기 전 스스로 세례를 주고

아기의 무덤에 나무 십자가를 세우고

들꽃 한 묶음 놓아주는 테스의 모습이

슬프고 안쓰럽고 애잔합니다


목장으로 소젖 짜는 일을 하러 떠난 테스는

목사의 아들 에인절(피터 퍼스)과 사랑에 빠져요

6일은 일하고 일요일 하루는 교회에 가는데

깨끗이 차려입은 옷을 적실까 염려하는

네 여자들을 안아 물웅덩이를 건너 주는

에인절의 모습이 로맨틱합니다


'테스~다른 세 사람을 위한 수고가

모두 당신 한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테스의 귀에 속삭이는 에인젤은 사랑꾼이죠

테스를 안고 물웅덩이를 건너기 위해

테스의 앞에 있던 세 여자를

차례차례 안아 건너 주거든요


텀벙텀벙 물웅덩이를 건너는 소리가

앞의 세 여자를 안고 건널 때는 재빠르고

테스를 안고 건널 때는 느리고 부드러워요

내 눈에는 테스 너만 보여~라고 말하는 듯하죠


천사처럼 순수한 모습의 테스에게 청혼하는

에인절을 테스는 자신의 과거 때문에 피하면서

고민하고 갈등하다가 그의 사랑을 믿고 결혼합니다

결혼 첫날밤 에인절이 먼저 잘못을 고백하자

테스도 미혼모였던 사실을 털어놓아요


그러나 사랑이란

한순간 돌아서면 부질없는 것이죠

테스를 사랑하지만 테스의 과거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에인절이

브라질로 떠나버린 후

일편단심 에인절을 기다리며

자존심 꼿꼿하게 힘겨운 삶을 이어가지만

테스는 가난에 지쳐 주저앉고 말아요


테스의 가족까지 보살펴 주겠다는

나쁜 남자 알렉의 도움을

더는 뿌리치지 못하 받아들입니다

사랑이 변한 게 아니라

생계형 변심인 거죠


테스의 편지에 답장 한 장 보내지 않던

에인젤이 깊은 후회를 안고 테스를 찾아와

용서를 구하지만 때는 이미 너무 늦었어요

절망에 빠져 알렉을 찌르는

비극적인 테스의 모습을

천정의 핏자국으로 대신하는

감독님의 섬세함이 마음에 들어요


경찰에 쫓기며 에인젤과 달아난 테스가

스톤헨지 돌무덤에서 마지막 밤을 보냅니다

이곳이 회개의 장소냐고 묻는 테스에게

에인절은 도망가자고 하지만

하늘에서 다시 만나자며 잠이 들고

부옇게 밝아오는 아침해와 함께

저 멀리서 경찰 수색대가 말을 타고 다가옵니다

테스는 살인죄로 교수형을 받았다는

자막으로 영화는 끝~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파란만장한 삶을 헤쳐나가는

순수하면서도 올곧고 강인한 테스의 모습을

비극적이지만 섬세하고 아름답게 그려냅니다


원작의 줄거리를 조르르 따르면서도

원작이 지닌 어두운 분위기를

밝고 섬세하고 부드러운 영상미로 표현하고

음악과 음향도 적절히 활용하면서

테스가 알렉을 죽이는 장면은

천정에 번지는 핏자국으로

교수형은 자막으로 처리하는 등

간접적인 표현을 통해

청순한 테스의 매력을 지켜줍니다


나쁜 남자 알렉이 망가뜨리고

남편 에인절이 지켜주지 못한 청순한 테스와

테스의 순수한 사랑을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대신 지켜준다는 생각을 하며

감상도 끝~내려다가

첫 장면이 다시 생각나 덧붙여 봅니다


아름답고 포근한 들판에

들일을 끝내고 춤을 추기 위해

머리에 꽃장식을 하고 하얀 옷을 입고

줄지어 나타나 파트너를 기다리는 여자들

그 속에 어리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테스가 있었죠


우연히 지나가다 불쑥 끼어든

젊은 청년들 속에 에인절이 있었어요

에인절이 여자들 중 하나와 춤을 추는데

거기서부터 테스와 에인젤은 어긋납니다

목장에서 만났을 때

테스가 에인절을 기억해 내고 이렇게 말해요

그때 나와 춤을 춰주지 않은 사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초록의 시간 281 보랏빛 안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