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287 바람의 기도
다큐 영화 '안나푸르나의 김써르'
파랑과 노랑
순수한 원색에 깃든
맑고 투명한 슬픔을 봅니다
아이들의 운동복은 파랑 바탕에
노란 세로 두 줄이 유난히도 선명하고
그림이나 노래가 공기의 색을 칠한다는
갤러리 카페 주인장의 말씀이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하늘 닮은 파랑이 희망이라면
순수한 노랑은 꿈이 아닐까 싶어요
7학년인 열네 살 수미따의
아빠는 하늘나라에 계시답니다
32살 어리고 젊은 엄마는
자신의 나이보다 더 묵직하고 버거운
45Kg이나 되는 모래나 돌덩이를
등에 지고 나르는 일을 하며
수미따와 라슈미와 막내 세 아이를 키우고
수미따는 동생들을 돌보고 밥도 하고
동생 라슈미의 공부도 도와주죠
야무진 수미따는 착하고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려요
김써르는 수미따네 집에 뚜라라는 이름의
노란 방울을 매단 새끼 염소를 선물하는데요
수미따 가족을 위한 꿈과 희망을 노래하듯이
뚜라의 목에 달린 노란 방울이
또랑또랑 사랑스러운 소리를 냅니다
김써르가 수미따의 막냇동생에게 건네는
초콜릿에는 달콤한 사랑도 듬뿍 얹히고
푸른 비단처럼 펼쳐진 하늘 아래서
수미따가 또박또박 그리는 그림에는
수미따 가족의 가난한 행복이 담깁니다
책상 값 대신 그만큼 일을 하기로 한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색 뜨개모자를 쓴
사빠나 아빠는 무거운 나무를 등에 지고 나르며
사빠나가 공부 잘하기를 바라죠
사빠나 아빠는 며칠 고생 끝에 마련한
책상 위에 편지를 붙여놓아요
읽고 쓰기 편하게 작은 책상과
의자를 선물한다는 아빠의 편지를 읽으며
울컥하는 딸 사빠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아빠의 눈물이 진주보다 고와서
마음이 찡합니다
십 년 동안 아픈 아내를 보살피다 작별하고
네팔로 떠나온 김써르는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칩니다
아내가 떠나며 남긴 유언은
자유롭게 살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살라는 거였답니다
'내 집은 다음 생'이라는
김써르의 말씀이 마음에 남습니다
아이들에게 날개를 달아주고 싶다는
김써르의 머리 위에는 새파란 하늘이 환하고
저 멀리 새하얀 이마를 드러낸
안나푸르나가 보입니다
산스크리트어로 수확의 여신이라는
세계에서 열 번째로 높은 산이라죠
티베트어로 다루촉이라 부른다는
오색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이
간절한 염원의 손짓 같아요
기다란 줄에 매달려 파르르 나부끼는
오색 깃발에는 경전의 말씀이 쓰여 있고
바람이 불 때마다 경전을 한 번 읽은 셈 친다는데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이들을 위한
배려의 마음이 담겼다고 해요
히말라야 맑은 물에 빨래를 하며
영혼까지 맑아지는 것 같다는 김써르는
드디어 아이들과 함께
갤러리 카페 전시회에 갑니다
'저희 인생에 와 주셔서 감사하다'는
아이들의 감사 인사와 등산화 선물과 함께
함께한 지 5년의 사랑과 감사가 담긴
편지까지 김써르에게 감동으로 전해집니다
갤러리 카페 전시회가 끝난 후
김써르는 전시했던 아이들의 그림 액자를
집까지 들고 가서 벽에 걸어줍니다
새 한 마리 날아와 가만히 구경하는
주황빛 흙벽에 걸리는 그림이
부드럽고 따뜻해서 마음이 잔잔해집니다
따뜻하게 기억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김써르를 파란 하늘이 다정히 지켜주고
덤으로 김써르(김규현 선생님)가
직접 찍으신 영상이 조르르 이어집니다
74세의 한국인 김써르는 그렇게
그들의 인생에 귀한 손님이 되셨어요
아이들 역시 김써르의 인생에
사랑스러운 손님이 되어
서로의 꿈과 사랑을 나누는 모습이
아이들의 그림처럼 착하고 정겹습니다
맑고 투명한 파랑과 노랑의
해맑은 순수미 간직한 아이들에게
훨훨 날아오를 수 있는 날개는
이미 자라나기 시작했으니
그들의 꿈이 바람을 타고 하늘 높이
파르르 날아오르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