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332 가을과 나

심금을 울린다는 말

by eunring

쌀쌀한 아침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저 먼 산에 안개가 자욱합니다


안개는 구름이 없고 바람 잔잔한 날

대기 중의 수증기가 한데 엉겨 뭉치면서

부옇게 떠 있는 아주 작은 물방울들이래요

같은 물방울이지만

하늘 위에 떠 있으면 구름

땅에 가까이 떠 있으면 안개인 거죠


가을날 아침 안개는

맑은 하루를 알려준다고 합니다

해가 떠오르면 안개는 걷히고

한낮에는 따가운 볕이 거침없이 쏟아지겠죠


'가을 안개는 쌀 안개

봄 안개는 죽 안개'라는

재미난 속담도 있답니다

봄 안개는 습도가 높아

보리의 성장을 방해하고

가을 안개가 끼면 날씨가 맑으니

일조량이 많아 벼를 익게 한다는군요


가을 안개 부옇게 피어올라

들판의 곡식들은 황금빛으로 영글어가고

따가운 볕을 안고 가을바람이 살랑거리면

가슴에서 느닷없이 악기 소리가 납니다

곡식들이 익어가듯이

감성도 영글어가는 것일까요


가을을 악기에 비유하면

아마도 현악기가 아닐까 싶어요

차분하고 묵직하게 가슴을 울리는

첼로나 거문고의 음색이

가을과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금슬(琴瑟)이라는 말이 있어요

거문고와 비파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죠

거문고와 비파의 화음이 조화롭듯이

부부 사이의 다정함과 화목함을 이르기도 해요


가을이라는 계절과 나 사이도

거문고와 비파처럼 다정하고

화목했으면 좋겠어요


가을날 불어대는 바람이

명주실을 꼬아 만든 여섯 줄인 듯

내 마음의 울림통 위에 사뿐히 얹히고

가을이라는 감성의 술대로 줄을 치거나 뜯으며 고즈넉한 가을의 소리를 내는 것 같아요


심금(心琴)을 울린다는 말이 있는데요

무언가로 인한 마음의 미세한 떨림을 말하죠

불교의 경전 '아함경' 부처님의 말씀 중

거문고의 비유에서 나온 말이랍니다


부처님의 제자 중에

거문고를 잘 타는 비구니 소로오나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부지런히 몸과 마음을 수양했으나

깨달음의 길이 보이지 않아

지치고 조급해졌답니다


부처님이 거문고의 비유로

소로오나를 다독여주셨다고 해요

거문고의 줄이 너무 팽팽하면 줄이 끊어지고

느슨하게 헐거워지면 소리가 나지 않아

깊고 고운 소리를 낼 수 없듯이

몸과 마음을 닦는 수행도 지나치거나

부족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씀이랍니다


적당히 알맞게 조여진 상태에서

맑고 고운 거문고 소리가 난다는

비유의 말씀을 듣고 난 소로오나는

몸과 마음의 건강도 챙기며

수행에 정진하게 되었답니다


마음의 거문고를 울리듯 수행하라는 말씀을

불자는 아니라도 마음에 새기며

구슬프게 익어가는 가을과

친하게 지내보렵니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가을 감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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