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321 사랑의 기본 레시피

영화 '케이크메이커'

by eunring

섬세함과 아름다움이

사랑의 기본 레시피가 아닐까요

말수가 적은 대신 여백이 많은 영화는

말없이 흘러가는 강물 위로

잔잔히 쏟아지는 금빛 햇살처럼

섬세하고 아름답게 공감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속삭입니다


빵과 쿠키를 반죽해서 굽고

보들보들 달콤한 케이크를 만들고

향기로운 커피를 내리고

음식을 만드는 장면들이 나오지만

디저트 영화가 아니라서

갓 구운 빵처럼 포근하거나

쿠키처럼 바삭하지도 않고

케이크처럼 달콤하지도 않아요


사랑에 관한 영화 '케이크메이커'는

사랑이 꼭 수다스러울 필요가 없고

사랑이 반드시 하나인 것이 아님을

묵묵히 보여줍니다


그럼요 사랑에는 국경도 없다잖아요

종교와 언어와 문화와 성별까지도 넘어서는 것이

진심 사랑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담고 있어

어느 순간 당혹감을 주기도 하지만

덤덤하고 잔잔한 영화의 표정을 통해

어색함과 당혹감까지도 한순간

자연스럽고 괜찮은 느낌으로 바뀝니다


바삭하고 고소한 쿠키들과

달콤한 케이크와 커피 한 잔을 곁들여

저마다 달라서 더욱 소중한 사랑과

외로움의 묵직한 깊이에 대해 듣는 것 같아요

다양하고 다채로운 케이크들처럼

인생도 다르고 사랑도 제각각인 거죠


대사로 듣는 게 아니라

배우들의 표정으로 듣고

빵과 쿠키와 케이크들을 통해

사랑의 단맛과 쓴맛을 느껴봅니다

아련함과 쓸쓸함과 고독과 희망까지도

밀가루 반죽 안에 차곡차곡 담겨있어요


베를린으로 자주 출장을 오는

이스라엘 남자 오렌(로이 밀러)은

토마스(팀 칼코프)의 작은 베이커리 카페에서

에스프레소와 아내에게 선물할 쿠키 한 상자와

블랙 포레스트 케이크 한 조각을 주문합니다

초콜릿 케이크 위에 하얀 생크림이 얹힌

블랙 포레스트 케이크를 먹는

오렌의 얼굴이 행복해 보입니다


케이크를 좋아하는 오렌은

베를린의 파티셰 토마스와 연인이 됩니다

출장을 마치고 돌아간 오렌으로부터

한동안 연락이 없어 회사로 찾아간 토마스는

오렌이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되죠


작은 베이커리 카페 혼자만의 공간에서

말없이 반죽을 밀고 쿠키를 굽던 토마스는

오렌을 잃고 방황하며 고통스러워하다가

그의 흔적을 찾아 이스라엘로 떠납니다

그의 열쇠 꾸러미를 들고 수영장에도 가고

그의 아내 아나트(사라 애들러)의 카페를 찾아갔다가 아르바이트를 하게 됩니다


아들 이타이의 생일이라 바쁘다고

한두 시간 더 일해 달라는 아나트의 부탁에

기꺼이 고개 끄덕이고 피망의 속을 다 파낸 후

독일인 파티셰 토마스는 쿠키를 만들어요

혼자 조용히 묵묵히 담담하게

밀가루 반죽을 하고 쿠키를 굽는

토마스의 표정이 무심하고 무덤덤해서

인물이 아닌 하나의 풍경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유대인이 아니니 오븐을 쓰면 안 된다며 깜짝 선물로 애써 만든 쿠키를 다 버리라는

이타이의 삼촌 모티(조허 슈트라우스)의 핀잔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토마스에게

아나트의 고맙다는 전화가 옵니다

쿠키가 맛있다고 카페에서 팔고 싶다며

코셔 인증에도 문제없다고 하죠


이스라엘에는 코셔 인증 제도가 있답니다

유대인이 만들어야 하고

재료와 요리법까지 유대교 율법에 맞아야

코셔 인증을 받는다고 해요


학교에서 없어진 이타이를 찾느라

아나트가 자리를 비운 어느 날

손님이 카푸치노를 주문하자

망설이던 토마스는 커피를 만들어

쿠키 한 조각을 덤으로 얹어 건넵니다


아나트는 돌아오지 않고

저녁때 카페 앞에 주저앉아 있는

이타이에게 토마스는 아무 말없이

따뜻한 코코아 한 잔을 건네죠

코코아 한 잔에 담가 토마스의 진심이

그대로 이타이에게 전해지는 듯~


밀가루 반죽을 밀어 쿠키를 만드는

토마스 곁에서 이타이도 함께 쿠키를 만들어요

짤주머니로 쿠키 위에 문양을 그리는

진지한 이타이의 표정이 귀엽고사랑스러워요


유대인은 아니지만 코셔 아파트니까

코셔 규칙을 지키라는 모티의 잔소리를 들어가며

토마스는 아나트에게

베이킹의 기본부터 알려줍니다

밀가루 설탕 버터가 기본 레시피라고

밀가루 반죽하는 법을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토마스가 한결 밝아 보여 다행입니다


금요일 저녁 이타이와 셋이서 식사하자는

아나트의 초대에 비를 맞고 젖은 채 가는

그의 손에는 블랙 포레스트 케이크가 들려 있어요

이타이가 가져다준 옷으로 갈아입은

토마스 머리 위에 유대인의 모자

키파를 씌우는 이타이가 귀엽습니다

기도를 하는 아나트와 이타이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토마스도 아멘~


맛있어 보이는 블랙 포레스트 케이크를 앞에 두고

모티 삼촌이 토마스가 만든 건 먹지 말랬다는 이타이와 달리 행복하게 먹는 아나트는

사랑스러운 주근깨 소년 이타이에게

크림 부분만 골라 먹으라고 하죠

눈썹 그림자까지도 귀여운 이타이는

살금살금 케이크 크림을 먹어요


혼자 케이크를 먹다가

접시 바닥까지 알뜰히 먹는 아나트와

집에서 혼자 유대인 모자를 써보는 토마스는

상실감과 외로움의 어둡고 깊은 터널에서

한 줄기 희망의 빛을 찾은 것 같아요


토마스의 케이크 덕분에

아나트의 카페는 인기몰이중인데

토마스가 비유대인 직원이라 주변에서 말이 많아

코셔 인증이 취소될 수도 있다고

모티는 걱정합니다


남편의 유품 상자를 열어보는 아나트는

'마음의 치유' 책과 독일어 영수증들을 사이에

접혀 있는 메모 한 장을 유심히 들여다보고는

크레덴츠 카페 & 베이커리 검색하다가

토마스와 함께 식재료를 사러 나가는데요


이스트 쓰는 법만 알면 된다며

아나트에게 반죽법을 알려주는 토마스에게

남편 오렌이 차 사고로 죽었다고

아나트가 먼저 말을 꺼냅니다

회사 일로 자주 가던 베를린에서 사다준

시나몬 쿠키가 토마스의 쿠키보다

맛있었다고 웃는 아나트와

토마스는 그렇게 가까워집니다


장을 보고 카페에 들른 오렌의 어머니 가

아들 오렌은 독일어를 잘했다며

토마스에게 오렌을 아느냐고 물어요

장바구니를 집까지 들어달라고 부탁하고는

치즈와 허브를 넣은 가지 요리라며

샤밧 음식을 챙겨주는 오렌의 어머니는

토마스에게서 아들의 흔적을 느꼈을까요


유품 상자 속을 뒤적이다가

남편 핸드폰 메시지를 들으려다 말고

아나트는 남편의 옷을 챙겨 토마스에게 갑니다

필요하면 골라 입으라는 아나트에게

토마스는 빵을 건네죠

차에서 빵을 먹는 아나트와

오렌의 옷을 보다가 달리러 나가는 토마스는

오렌의 빈자리에 서로를 담아가기 시작합니다


진지하게 여러 종류의 빵을 만드는 토마스와

행복한 미소 머금으며 빵을 음미하는 아나트

그리고 샤밧 샬롬~인사를 건네며

토마스에게 감자요리와 속 채운 채소

샤밧 음식을 전하는 모티는

다음 샤밧 때 혼자 있지 말고

집으로 꼭 오라는 말도 덧붙여요

그렇게 토마스는 낯선 문화에 동화되어 갑니다


아나트의 카페 파몬에

120인분 주문이 들어와요

살구 케이크 블랙 포레스트 케이크

초콜릿 롤케이크 스트뤠젤 구겔호프 팔미에 등

케이크 대량 주문을 받은 아나트는

모티에게 아들을 맡기고

토마스와 함께 케이크 만들기 모드에 돌입합니다


반죽 밀다 말고 토마스 어깨에 기대는

아나트는 토마스를 통해

스스로의 상처를 다독이는 모습입니다

아나트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토마스도 같은 마음이겠죠


토마스는 휴대전화 속 이타이의 사진을

보여주던 오렌을 회상합니다

가족은 중요하다고

가족이 있어 외롭지 않다는 오렌에게

토마스는 이렇게 말하죠


'난 혼자 아니야 집도 있고 직장도 있고

한 달에 한번 만나지만 오렌 너도 있잖아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도 있어

혼자 태어나서 죽을 때도 혼자

할머니는 항상 가진 것에 감사하라고 하셨어'

토마스가 할머니는 베를린 외곽 작은 마을에서 빵집을 하셨는데 이 년 전 돌아가셨고 하자

오렌은 아내가 카페를 열었다고 하죠


오렌의 어머니는

파프리카 속을 채우는 토마스에게

복도 끝 아들 방이 열려 있으니 보라고 해요

천천히 복도를 걸어가 오렌의 방문을 여는

토마스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입니다


물 대신 레몬을 넣는

오렌의 반죽 방식 알려주는 아나트는

크레덴츠 카페 영수증들을 토마스에게 보여주며

남편은 베를린으로 새 삶을 살려고 떠나다가

차 사고로 죽었다는 아픈 이야기를 전합니다


남편 오렌의 유품 속 메모 글씨가

토마스의 글씨와 같은 걸 본 아나트는

오렌의 휴대전화에 남겨진 음성메시지를 듣고 토마스가 오렌의 연인이었음을 알게 되는데요

사랑하는 사람의 빈자리에 들어선

새로운 사랑 토마스가

남편 오렌의 연인이었다는 당혹감과

아나트가 느꼈을 아픔과 분노는

깊고 무겁고 날카로웠을 테죠


모티가 토마스에게 비행기표를 건네고

바로 떠나라고 하며 분노의 일격을 날리자

꾹꾹 눌러 담았던 외로움이 폭발하는 듯

서럽게 우는 토마스의 눈물이

가엽고 쓰라리고 안타까워요


3개월 후~

아나트의 카페에 토마스는 없지만

토마스의 레시피로 만든 케이크 덕분에

케이크 유명 맛집이 됩니다


토마스의 카페를 찾아 베를린으로 가서

토마스가 카페에서 나와 자전거를 타고 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이다가

이내 평온한 미소를 머금으며

파란 하늘과 구름을 바라보는

아나트의 모습이 먹먹해요


씁쓸하면서도 향기로운

커피 향과도 같은 여운이 오래 남는

'케이크메이커'를 보고 난 후에는

씁쓸 커피 한 잔에

달콤 케이크 한 조각이 필요해집니다


베를린의 카페에서 살아가는 토마스와

예루살렘의 카페에서 살아가는 아나트

두 사람의 상처가 단단히 아물어

서로 다른 곳에서

환하게 웃는 모습을 상상하며

커피 한 모금에 케이크 한 입~


그러다 보면 어느새

먹먹한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니

그 또한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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