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327 가을의 빛
가을은 감성으로 물들어요
보리수 큰언니의 사진 속에
주렁주렁 어른 주먹만 한 감들이
고운 주홍빛으로 물들고 있요
주홍빛이 아련한 감성의 빛이라는 걸
감나무 사진을 보며 새삼 느껴봅니다
'감이 감색으로 익어간다'는
보리수 큰언니의 말씀 속에서
가을의 빛이 주홍으로 스며들고
온 세상이 가을 감성으로 물들어갑니다
그럼요~
감은 감색으로 익어가는 거죠
감이 딸기색이나 포도색으로 익어가면
자연스럽지 않아서 어색한 거잖아요
평범하지만 그 평범함 속에
인생도 담겨 있고 추억도 스며듭니다
가을의 빛이 진해질수록
예전의 일들이 다 그립다고 하시는
보리수 큰언니는 어릴 적 연둣빛 봄날
장독간 사이에 하얗게 떨어지던
왕관 닮은 감꽃도 새삼 그리우시답니다
보리수 큰언니표 라떼 감성에는
고욤 열매의 떫은맛도 스며 있어요
가을이 지나도 그 떫은맛에 진저리 치던
고욤 열매도 새록새록 그리우시답니다
'걔는 쪼깐한 항아리에 빼곡히 담아놨다
흰 눈 내리는 한 겨울이 되면
조청 꿀보다 더 진한 단맛을 선사하던
희귀한 물건이었다오'
고욤 열매는 아직 본 적이 없지만
고욤감잎차는 마셔본 기억이 있어요
감잎차보다 쌉싸름한 단맛이 진하고
구수한 맛과 은은한 향으로 떠오르는데
고욤 열매는 떫은맛인가 봅니다
올망졸망 쪼매난 포도알만 한
고욤 열매는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럽답니다
감 씨를 심으며 고욤나무 싹이 나고
삼 년쯤 자랐을 때 감나무와 접목하면
감나무가 된다고 하죠
그래서 고욤나무를
감나무의 엄마라고 부른답니다
신기한 것은 가을에 무르익은 감을
따지 않고 몇 그대로 내버려 두면
몇 년 후에는 감나무가
고욤나무가 되기도 한다는군요
감 열매를 키우지 않아도 된다고
감나무가 생각하기 때문이래요
큰언니가 포근하게 드리우신
감나무 그늘 아래 잠시 서성이며
쌉싸름하면서도 구수한 단맛 나는
고욤잎차 한 잔을
홀짝홀짝 마음으로 마셔봅니다
고욤잎차 향내가 은은히 퍼졌을까요
막내 인선이도 쏙 고개를 들이밀어요
'저는요~
그때나 지금이나 아침잠이 없어서요
아버지 일어나실 때 조르르 따라 일어나
온 동네 다니면서 밤새 떨어진 땡감을 주웠어요
그거 주워오면 엄마가 소금물에 담가서
떫은맛을 없애 주셨죠'
하얀 꽃님이도
외할머니 생각이 나신답니다
'우리 외할머니께선 덜 익은
파란 감이 떨어져도 버리지 못하고
소금물에 담갔다가 드셨어요
그걸 침 담가서 먹는다 하셨던 거 같아요
오래전 기억이라 맞는지는 모르지만
옛 추억이 슬금슬금 떠오르네요'
감의 떫은맛을 없애기 위해
소금물에 담그는 것을 침(沈)담그다
그렇게 떫은맛을 없앤 감을
침시(沈枾)라고 한다는군요
우리 인생의 떫은맛도 침담가서
홍시의 달콤한 맛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인생의 떫은맛은 소금물이 아닌
시간의 바닷물 속에 침담가 우려내야겠지만
어차피 바닷물도 소금물이고 짠물이니
그게 그거라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납니다
감나무 사진 아래 도란도란 모여
라떼 감성 주고받고 나눌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이 기쁨이고
별일 없는 하루하루가 평온함이라는 걸
감색으로 익어가는 가을의 빛 속에서
느끼고 생각하고 배워갑니다
인생이 떫으면 떫은 대로
감이 감색으로 익어가듯이
가을도 가을의 빛으로 물들고
인생도 인생의 빛으로 곱게 스며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