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362 아버지 나의 아버지

단감을 품다

by eunring

아삭하고 달콤하고 빛깔도 고운

단감을 한 무더기 끌어안고

문득 아버지 생각을 합니다

주홍빛으로 고운 가을의 빛을 품고

잔잔히 저무는 석양빛을 닮은 단감이

달달한 추억의 맛으로 안겨드는 순간입니다


술 담배를 안 하시는 대신

아버지는 과일과 과자를 즐겨 드셨어요

요즘 마트에는 벌써 딸기가 나오기 시작하지만

나 어릴 적엔 눈부시게 따뜻한 봄날이면

딸기밭 나들이의 추억으로 달콤 상큼

수박과 복숭아의 향긋한 맛으로 다가서는

눈부신 여름날의 추억 어딘가에는

밤하늘의 별들도 또랑또랑 박혀 있고

단풍잎 물들어가는 가을 풍경 속에서

알알이 고운 빛으로 익어가는

주홍빛 단감의 아삭한 추억 또한 달달합니다


할머니는 달콤한 붉은 홍시를 좋아하셨고

아버지는 아삭한 단감을 좋아하셨죠

가을과 함께 무르익어가는

단맛이 독특한 감들 중에서도

아삭하게 씹히는 맛이 좋은 단감을 보며

오랜만에 아버지를 불러봅니다

단감 한 알에 불려보는 아버지

또 한 알에 다시 불러보는

나의 아버지


가을이 주홍빛으로 붉어갈수록

마음에는 있으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그리운 이들이 더 많이 그립습니다

불러도 대답 한 미디 없을지라도

그리운 이름 하나씩 불러봅니다

지나는 바람이 그리운 이들의 대답을

대신 전해 줄지도 모르거든요

가을은 추억으로 깊어지는

쌀쌀한 감성의 계절이니까요


붉은 빛깔의 부드럽고 달콤한 홍시

물렁하게 잘 익어 홍시보다 덜 떫고

조금 더 부드러운 단맛의 연시도 있죠

홍시는 빛깔이 붉어 홍시

연시는 물렁물렁해서 연시라는군요

그리고 쫄깃 달콤하게 말린 곶감도 있는데

아버지는 단감을 좋아하셨어요


가을이 익어가고 단감이 무르익으면

학생 시절 배운 노계 박인로의 시조

'조홍시가(早紅枾歌)'가 생각납니다


'반중(盤中) 조홍(早紅) 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 아니라도 품음 직도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 이 없으니 글로 설워하나이다'


중국 삼국시대 육적(陸積)의

회귤(懷橘) 이야기를 노래한 것이랍니다

육적이 귤을 가슴에 품는다는 뜻의

'육적회귤(陸積懷橘)은

지극한 효성을 비유한 말이죠


오(吳) 나라의 육적은

손권의 참모를 지낸 사람으로

여섯 살 어린 나이에 원술을 만났답니다

어린 육적에게 맛보라고 몇 알의 귤을 건네고

원술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육적은 그 귤을 슬며시 가슴에 품었다죠

돌아갈 때 인사를 하다가 그만

가슴에 품었던 귤이 쏟아져 나왔답니다

왜 먹지 않고 품에 품었느냐고 묻자

집에 계신 어머니께 드리기 위해서였다는

육적의 옛이야기를 시조로 읊은 것이

'조홍시가(早紅枾歌)'랍니다


고운 빛깔의 단감 한 무더기 앞에 두고도

품어가 반길 아버지 안 계시니

더욱 쓸쓸하고 적막하지만

마음으로 단감을 품어봅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불러본

아버지 나의 아버지~


아버지를 꼭 닮은 막냇동생보다

훨씬 젊으신 모습으로

내 안에 살아계시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아삭하고 달콤한 단감을 예쁘게 깎아서

어린 날의 사랑스러운 추억을 먹습니다


단감 한 조각에 불러보는 아버지

또 한 조각에 불러보는

나의 아버지~

keyword
작가의 이전글초록의 시간 361 니가 어디 있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