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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의 시간 390 엄마 곁에서

햇살과 함께

by eunring

차갑고 한가로운 겨울 한낮

나른하고 적막한 우리 집 거실에는

밝고 환하고 눈부신 햇살이

따사롭게 아낌없이 비쳐 들어요


소파에 길게 누우셔도 그 곁에

내가 앉을자리가 넉넉히 남을 만큼

작고 조그마해져서 더 애잔하고 안쓰러운

엄마의 이마 위로 금빛 겨울 햇살이

거침없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아야~햇살이 반갑지 않다'고

엄마가 중얼거리십니다

아마도 눈부시게 파고드는 햇살이

눈에 따가우신가 봐요


커튼을 조금 내려 그늘을 만들었는데

오후가 길어질수록 햇살도 한 뼘 더 길어져

내가 좋은지 해가 나만 따라다닌다~고

엄마가 해맑게 웃으십니다


엄마 곁에서 햇살과 함께

나도 덩달아 따라 웃으며

커튼 한 뼘을 더 내리다 보니

금방 어스름 저녁이 달려들어요


겨울 해는 짧아서 하루가 금방 저물고

반짝이는 햇살의 눈부심도 이내 사라집니다

금싸라기 같은 엄마의 시간들도

겨울 한낮처럼 빠르게 기울고

서둘러 저물어갈 거라 생각하니

문득 씁쓸하고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엄마 곁에서

귀하고 따사로운 겨울 햇살과 함께

눈이 부시다고 투정도 부릴 수 있으니

겨울 해가 유난히 짧은 만큼

더없이 소중한 순간이고

귀한 시간임이 분명합니다


엄마 곁에서 햇살과 함께 누릴 수 있는

꽃 같은 기쁨을 와락 끌어안으며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도

곱게 간직하는 겨울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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