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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Jan 08. 2024

초록의 시간 669 그림자처럼 빠르게 꿈결처럼 짧게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

하루라는 이름의 이파리가 어느새

여덟 이파리째 소리도 없이 떨어지고

시간이 그림자처럼 휘리릭

꿈결인 듯 짧게 스치고 지나갑니다


셰익스피어 님은 '한 여름밤의 꿈'

1막 2장에서 헬레나의 대사를 통해

맹목적인 사랑의 무분별함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랑은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는

그래서 날개 달린 큐피드를

눈먼이로 그린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에는

분별심이라고는 조금도 없지

눈은 없고 날개만 있는 것은

물불을 가리지 않는

급함을 나타내는 거야'


구구절절 옳으신 말씀이라고

연거푸 고개를 끄덕이며

읽고 또 읽어봅니다

되풀이해 읽다 보니

사랑과 세월은 맹목적이고

발걸음의 급함똑 닮았습니다


맹목적인 사랑의 무분별함과

성급한 발걸음을 생각하니

교향곡에 이야기를 어우러지게 한

최초의 작곡가 베를리오즈가 떠오릅니다


의사 집안에 태어나 의학을 공부하다가

급회전하여 음악의 길로 들어섰다는 그는

예술가의 사랑과 죽음을 묘사한

'환상교향곡'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상징하는 가락을

악장마다 대놓고 등장시킨답니다


셰익스피어 님의 오필리어와

줄리엣을 연기한 아일랜드 출신의 여배우

헤리어트 스미드슨에게 마음을 빼앗겨

절절한 고백의 편지를 보냈으나

당시 베를리오즈는 완전 무명이어서

인기 여배우는 안타깝게도

무명 작곡가의 마음을

제대로 받아주지 않았다고 해요


사랑의 환상에 빠진 그는

우울과 고통과 절망 속에서

정신줄 놓고 허우적거리다가

실연의 상처와 아픔을

'환상교향곡'으로 승화했다는데요


'어느 예술가의 초상'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고

악장마다 제목을 가진

표제 교향곡인데 악보의 첫머리에

'사랑에 빠진 젊은 예술가가

실연의 아픔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버리려 하지만

환각 상태에 빠져들어

꿈에 그리던 연인의 모습과 함께

환상을 보게 된다'라고 썼답니다


그는 용기가 없어

그녀를 연주회에 초대하지 못했으나

년 뒤 연주회에 그녀가 왔고

자신이 음악의 주인공임에 감동

연인이 되어 결혼까지 했으나

동화 같은 해피엔딩은 아니었대요


결혼과 함께 환상은 파사삭 깨지고 

불타오르던 사랑도 싸늘히 식어가고

불 같은 성격의 두 사람은

무수한 다툼을 거듭한 끝에 

십 년 만에 손을 놓고

헤어졌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눈먼 것이라

연인들은 자신들이 저지르는

어리석은 짓을 알지 못해요

만약 알 수 있다면

큐피드도 나를 보고 얼굴 붉히며

평범한 소년으로 변해버릴 거예요'

참 옳으신 말씀

셰익스피어 님의 말씀입니다


'사랑은 소리처럼

하염없이 사라져 버리는 거야

그림자처럼 빠르게 꿈결처럼 짧게'

'한여름밤의 ' 대사를

부질없이 중얼거리는

지금은 바람 차가운 한겨울 

손과 마음 시린 얼음 한복판입니다


사랑도 아닌 

흐르는 시간이라는 것이

사랑 닮아 눈은 없고 날개만 있는 듯

바람결에 하염없이 날아지고

성급하게  사라집니다


금방이라도 바람 한줄기에

무심히 뚝 떨어질 것만 같은

시간의 이파리들을

그저 우두커니 바라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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