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다 40 화장할 나이

화장할 나이

by eunring

학창 시절

멋쟁이 영어 선생님이 그러셨다

너희들 나이에는

그냥 그대로 곱고 예쁘다

세수하고 난 맑은 얼굴이

비누 향내만으로도 풋풋하다며

화장을 서두르지 말라고 하셨다

화장은 천천히 시작하는 게

피부에 좋다고 하셨다


그 시절 나는 몰랐다

곱게 화장을 하고

멋진 옷을 입은 영어 선생님이

사실은 어리고 풋내 나는

우리를 부러워했다는 것을

예쁘지도 곱지도 않은 우리들의

청사과 같은 젊음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는 것을

나중에 한참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 시절에도

화장을 한 친구들이 더러 있었다

세수하고 로션 바르고 난 후

무언가를 덧발라서

얼굴이 뽀샤시 예뻐 보였다


볼 빨간 사춘기에서 벗어나

하루라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화장을 할 나이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화장을 한다고 모두 다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니지만

서둘러 화장을 하고

어른의 향기를 풍기려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러나 화장을 한다고

어른이 되는 건 아니었다

서두르지 않아도 어른이 된다는 것을

그때는 미처 몰랐을 것이다


화장을 한다는 것은

어른이 된다는 것이 아니라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더 많이 바라보고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이 아닐까

그냥 예쁘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다듬어가는 아름다운 손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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