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unring Jan 21. 2024

초록의 시간 679 인생의 잎사귀

영화 '더 파더'

푸르른 청춘의 잎사귀 팔랑이며

너무도 이른 나이에 세상과 작별하신

딸바보 나의 아버지를 생각하며

영화 '더 파더'를 봅니다


대배우님이신 안소니 홉킨스가

점점 자신을 잊고 기억을 잃어가는

아버지 안소니를 연기합니다

자신의 잎사귀가 다 지는 것 같다는

그는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입니다


불안과 상실감으로 고독하고 혼란스러운

치매 환자 안소니의 시선을 따르다 보면

시간과 공간 그리고 가족과 주변 사람들까지

모든 것이 뒤죽박죽 엉망진창이 되어

바라보는 사람을 미로에 빠뜨립니다

한없이 불안하고 애처롭고 먹먹한

영화 '더 파더'를 보며

아버지와 딸의 아픈 시간을

가만가만 더듬어봅니다


아버지는 런던 집에 계셔야 한다는

딸 앤에게 아들이 보고 싶다고

투정 부리는 아버지 안소니

그리고 점점 망가지고 뒤틀린 기억과

뒤엉킨 시간 속에서 무너져내리는

아버지를 요양병원에 두고 나오는

 앤(올리비아 콜맨)의 모습 위로

흐르는 음악과 앤의 무심한 표정이

오히려 적막해서 더욱 음울합니다


아버지를 향한 마음과

자신의 삶 중간 어디쯤에서

외롭고 혼란스러운 앤과

점점 기억이 흐려지는 아버지 안소니

아버지와 딸의 모습이 안타깝고

엇갈린 시선과 기억과 시간들이

덥석 낯선 두려움을 건넵니다


잠에서 깨어난 안소니

일어나서 커튼을 열자마자

딸을 찾다가 낯선 얼굴의 간병인에게

내가 왜 여기 있느냐 물어요

 먹을 시간이라는 대답에

시간 말고 왜 내가 왜 여기 있느냐고

연거푸 묻습니다


딸은 파리에 있고

폴이라는 남자와 산다고

엽서를 보여주는 간병인에게

방금 나간 남자는 누구냐며

저 남자가 왜 내 집에 있느냐고

내가 아는 사람이냐고

집과 요양병원을

마구 뒤섞어 생각합니다


그럼 난~

도대체 나는 누구지

혼란스러운 기억의 끄트머리를

간신히 부여잡고 그는 중얼거려요

안소니라는 이름은

어머니가 지어주신 이름 같은데

어머닌 눈이 아주 크셨다며

어린아이처럼 엄마 보고 싶다고

집에 가겠다며 우는

그의 모습이 애처롭기만 합니다


눈물 그렁한

그의 눈동자에 비치는 어린 소년이

엄마를 부르며 뛰어가는 장면이

뭉클한 슬픔의 발자국 소리를 내며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


'내 잎사귀가 다 지는 것 같아

나뭇가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겠어

내 몸 하나 누일 곳 없으니

손목에 시계를 차고 멀리 가야 한다' 

손목시계에 집착하는 그의 모습이

슬픔과 두려움으로 얼룩집니다


아버지 안소니와 딸 앤의 모습에서

짧은 인연으로 내 손을 놓고 가신

아직 내 맘 속 젊으신 아버지를 생각하는

이제는 살아생전 아버지보다 더 나이 먹은

딸의 먹먹한 시간 겹쳐 보입니다


젊고 또랑한 나이에 돌아가신

울 아버지의 시간이

짧지만 맑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래도 조금은 더 오래

인생의 잎사귀 혼란으로 팔랑일 때까지

내 곁에 계셨으면  좋았을까요

부질없는 질문은 조심스레 접어

보이지 않게 넣어두기로 합니다


영화 속 아버지 안소니

내 맘 속 딸바보 울 아버지

영화 속 딸 앤

울 아부지 딸인 나

그리고 참 먹먹한 영화

'더 파더'

작가의 이전글 초록의 시간 678 알고 보니 초록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