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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Jan 22. 2024

초록의 시간 680 상처와 우정 사이

영화 '나의 이웃 히틀러'

메마른 겨울숲 풍경과도 같은

쓸쓸함과 적막함 속 깊이

어딘가 모를 따뜻함이 깃드는

영화 '나의 이웃 히틀러'


죽은 아내가 아끼고 사랑했던 

검디검은 장미를 가꾸고

함께 먹던 오이절임을 만들어 먹으며

고향의 맛을 추억하는 노인 

마렉 폴스키(데이비드 헤이먼)

홀로코스트 생존자입니다


수용소에서 가족모두 잃고

콜롬비아로 이주를 해

외로이 살고 있어요


낡은 정원에 아내가 좋아하던

장미 덤불을 소중히 가꾸며 사는데 

그의 상처를 그대로 드러내듯

검디검은 흑장미입니다


행복하던 시절 가족사진을 찍을 때

아내가 흑장미를 그에게 건네며 말했었죠

가장 좋아하는 꽃이라고~

그래서 아내를 보듯 흑장미를 봅니다

이제는 곁에 없는 가족과 함께 하듯

흑장미와 함께 합니다


이웃에 이사를 온 독일인

헤르만 헤르조그(우도 키에르)는

얼굴이 히틀러를 똑 닮았어요

그의 회청색 눈동자를 보고

이웃에 히틀러가 산다고 신고하지만

믿지 않자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감시 아닌 감시를 하러 오가며

그와 가까워지려고

마주 앉아 체스를 두기도 하면서 

이웃이 됩니다


체스판을 사이에 둔 두 노인의

상처와 우정이 애잔합니다

두 사람 모두 히틀러로 인해

깊은 상처를 지닌 채 살고 있으니까요

이웃 독일인 역시 억울하기는 마찬가지

히틀러의 대역으로 살아온

상처를 지니고 있습니다


체스를 두고

함께 술을 마시기도 하고

파우스트의 대사를 외우기도 하며

두 사람은 친구가 되고

이웃사촌이 됩니다


나란히 앉아

절인 오이를 먹으며

고향의 맛을 나누고

서로 좋은 이웃이라며

그렇게 화해를 합니다


서로의 벽을 긁는 장면을 보며

깊은 상처는 시간이 가도 아물지 않고

상처의 흔적은 세월과 상관없이

여전히 남는다는 생각을 합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고

비로소 좋은 이웃이 되지만

함께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고

서로가 귀히 여기는 장미 한 묶음과

강아지를 우정의 선물로 나누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듯

따뜻이 안아주며 작별합니다


그럼요

사랑하는 가족도 언젠가는 헤어지고

죽고 못 사는 단짝친구와도

작별의 순간을 건너뛸 수 없고

좋은 이웃과도 만남과 이별을 겪는 게

우리네 인생이니까요


우울하고 무거운 내용을

코미디로 살짝 포장했으나 

어김없이 진지하고

결국은 서글픈 비극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해와 공감과 우정을 통해

잔잔한 재미와 훈훈한 여운을 남기고

좋은 이웃이라는 말을 곰곰

되새겨보게 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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