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454 시간의 뒷모습

영화 '시간의 끝에서 널 기다려'

by eunring

제목에 끌려 보기 시작한 영화

'시간의 끝에서 널 기다려'는

남주인공 린거가 여주인공 치우첸에게 주려고

등 뒤에 숨긴 한 묶음 수줍은 꽃처럼 예쁘고

그가 힘들게 일해서 그녀에게 선물한

발레슈즈에 새겨진 웃는 얼굴처럼 사랑스럽지만 휘리릭 달아나는 시간의 뒷모습을 바라보듯

애처롭고 안타까운 영화입니다


섣달 그믐날 우연히 그의 식당에 들른 그녀에게

만두를 대접하고 심심풀이로 노트에 쓰고 있다는 소설 이야기를 하다가 그가 말하죠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이라면

결과가 어떨지 알더라도 할 수밖에 없다'고~


함께 새해맞이 불꽃놀이를 보다가

'소설 속 두 사람이 다시 만나게 되면?'

묻는 그녀에게 그는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혹시 우리 만난 적 있느냐 묻는 그녀를 두고

무심한 듯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이

마치 그들을 두고 저만치 달아나는

시간의 뒷모습처럼 애잔하고 쓸쓸합니다


그는 그녀를 알고 기억하고 깊이 사랑하며

그녀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아낌없이 내어주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성큼성큼 나이 들어가고

그를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그녀에게는

낯선 사림이 되고 말아요

그녀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잊힌 사람이 되는

그의 사랑이 아프고 안타깝습니다


그런데요

춥다며 그녀에게 덧입혀준

그의 코트 주머니에 들어 있던 노트를 읽고

다시 그를 만나러 온 그녀는

'다시는 널 잊게 하지 마'라고 해요

"시간이 얼마나 허락될지 모르지만

함께 해야 시간도 의미 있는 것'이라는

그녀의 말이 뭉클합니다


어린 시절 엄마의 죽음으로 슬픔에 빠진

린거에게 치우첸은 유일한 친구였어요

연못에 빠진 구슬을 주으러 들어갔다가

연못 바닥에 떨어져 있는 시계를 줍게 되고

치우첸이 이사를 가는 바람에 헤어졌으나

고등학생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되는데요


고등학교 시절 치우첸이 교통사고를 당하자

그는 어린 시절 연못에서 주웠던 시계를 들고

그녀를 살리기 위한 간절한 마음으로

시간을 되돌리게 됩니다

교통사고 이전으로 시간을 되돌리자

그녀는 다시 살아나게 되지만

그는 갑자기 나이가 든 모습으로 변하고

치우첸은 물론 친구들과 아버지마저

그를 알아보지 못하게 되어

세상에서 잊힌 존재가 되어 버려요


그녀의 기억 속에 존재하지 않는

낯선 아저씨가 되어서도 그녀의 곁을 지키며

고등학교 시절 무용대회에서 2등을 한 그녀를 위해

구겨진 상장을 주워 벌이는 귀여운 사기극에 이어

그녀가 좋아하는 춤을 계속 추게 하려고

허름한 집에서 유학생활을 함께 하며

그녀의 학비를 위해 힘들게 일하지만

현실의 한계에 부딪치고 가난에 지쳐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길가에서 재미 삼아 손금으로 점을 보는데

그에게 여기 있으면 안 된다고

점술가 여인이 말해요

다신 운명을 바꾸지 말라고

운명은 정해져 있으니

운명을 바꾸면 비극이 된다며

당신의 시간을 다 쓰지 말라는 점술가의 말에

행복한 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직시하게 되는

그의 눈빛이 애틋합니다


귀국해서 발레단에서 공연하게 그녀는

이사하고 강아지도 기르자고 꿈에 부풀어요

강아지 이름은 녠녠이라 부르고

안정되면 결혼하자던 그녀에게

공연 중 무대 조명이 떨어지는 사고가 덮칩니다

그녀를 지키기 위해 그는 또다시

시계를 돌려 사고 전으로 시간을 돌이키고

더 나이를 먹은 그는 다시

그녀에게는 낯선 사람이 되어 버리죠

그에 대한 기억을 다 잃은 그녀의 곁에는

그가 아닌 멋진 남자 우항이 있습니다

무대 위에서 빛나는 그녀를 보며 그는

그녀 앞에 나타나지 않으리라 다짐합니다


이미 사라진 시간 속에서

18살에 끝날 치우첸의 인생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다 주어버리고 늙은 그가

고향에 돌아와 아버지보다 더 나이 든 모습으로 아버지의 이발소에서 머리를 자르고

거스름돈 대신 밥 한 끼를 부탁해요

집밥 먹은 지 오래됐다며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아버지와 함께

밥을 먹는 장면이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머리숱이 빠졌지만 가발을 이용해

헤어스타일을 안 바꾸는 이유는

죽우 아내가 좋아해서라고 아버지가

그의 어머니를 잔잔히 추억합니다

사탕을 좋아하는 아내가 사탕껍질로

하트를 다 못 접고 세상으로 갔다며

아버지를 보러 고향에 왔다는 그에게

아버지들의 마음을 건네며 술 대신 국으로

건배를 나누는 장면이 눈물겨워요


우항과 결혼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나려던 그녀는

그의 노트를 읽은 후 마음의 결단을 내리고

중환자실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늙고 병든 그를 찾아옵니다


마지막 순간에 눈을 그에게

그의 노트를 들고 그녀는 물어요

'왜 말 안 했느냐'는 그녀에게

'부담 갖지 마 그냥 소설일 뿐'이라는

그의 손을 잡고 웃으며 그녀가 중얼거립니다

'늑대야 늑대야 지금 몇 시니'

함께 한 시절을 추억하며 눈물짓다가

미안하다는 그에게 그녀가 다짐합니다

'미안해하지 마 다시는 널 잊지 않을게

베란다에 파를 심고 녠녠을 기르기로 했잖아 피자가게를 차리고

내 공연 축하파티를 하기로 했잖아'


그러나 스르르 눈을 감는 그의 시간은

이제 더는 남아 있지 않아요

그녀는 그의 시계를 찾아 시간을 돌려봅니다

그녀의 간절함으로 시계는 바사삭 깨지고

신비로운 힘으로 반짝 빛나며

이번에는 그녀가 그의 시간을 되돌려요


린거의 고등학생 시절로 되돌아간 시간 속에서

그보다 더 나이가 든 그녀가 내미는

두 사람의 사연이 담긴 노트를 사이에 두고

이번에는 고등학생이 된 그가 안타깝게도

나이 든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는군요


'운명이 다시 기회를 준다면

이번에는 대신 내가

잊히는 사람이 되어 널 지켜줄게

널 지킬 수 있게 해 줘 시간의 끝까지"

자막과 함께 제목이 이어지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시간의 끝에서 널 기다려'라는 제목은

그녀의 엔딩 멘트가 되는 거죠

자신의 삶과 시간의 소멸을 겁내지 않고

그의 사랑이 그녀를 구하고 지켜 주었듯이

이제 그녀가 시간의 끝에서

그를 기다리다가 간절한 사랑으로

그를 구하고 지켜주게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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