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469 감성 영화 한 편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by eunring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전하는

엄마와 딸 이야기입니다

엄마는 까뜨린느 드뇌브

딸은 줄리엣 비노쉬

그리고 에단 호크가 나옵니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프랑스를 배경으로

프랑스 배우들과 함께라니 안 볼 수 없죠


입을 열면 진실이 튀어나올까 봐 두렵다고

나쁜 엄마 나쁜 아내라도 좋은 배우인 게 낫다는 엄마 파비안느(까뜨린느 드뇌브)는

회고록 출간을 앞둔 전설적인 여배우입니다

'나는 배우라서 진실을 다 말하지 않아

진실은 전혀 재미가 없거든'


배우 엄마의 회고록 출간을 앞두고

딸 뤼미르와 사위 행크와 손녀 샤를로트가 뉴욕에서 오랜만에 파비안느를 찾아오죠

엄마의 회고록을 딸 뤼미르가

미리 읽기 시작하는데요

한때 엄마처럼 배우가 되고 싶었으나

배우의 꿈을 접고 시나리오 작가가 된 뤼미르는

'엄마의 책에는 진실이라고는 없다'고 말합니다

회고록의 내용이 온통 거짓으로 찰랑거리거든요


연기만을 위해 살아가는 바쁜 배우 엄마는

딸 곁에 머무르는 시간이 거의 없었죠

그러나 회고록의 내용은 다릅니다

엄마의 입장에서 돌아보는 시간들과

딸의 눈으로 바라보는 기억들은

달라도 너무 달라요


학교 앞으로 자신을 데리러 온 건

엄마가 아니라 사라였다고 딸은 말해요

뤼미르는 바쁜 엄마 대신

엄마 친구이며 라이벌 배우였던

사라와 함께 한 기억이 더 많거든요


파비안느의 친구이자 경쟁 상대였던

배우 사라는 파비안느에게 밀려나면서

안타깝게도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사라에게 의지하던 뤼미르는

엄마에 대한 원망이 더 깊어졌던 거죠

사랑이 깊을수록 원망도 깊은 거니까요


엄마의 거짓말이 불만스러운 딸에게

엄마는 자신의 기억이 분명하지 않다고

얼버무리며 변명합니다

변명이 아닌 진심일 수도 있어요

딸의 기억 속에 엄마는 없으나

엄마의 기억 속에는 늘 딸이 있었으니까요


파비안느와 수십 년을 함께 한 매니저 뤼크는 회고록에 자신의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고

'내 얘기는 회고록에 한 줄도 없더라'

실망 끝에 뤼미르에게 매니저 일을 맡기고

파비안느 곁을 떠나고 말아요


어쩔 수 없이 뉴욕으로 돌아가는 것을 미루고

엄마의 임시 매니저 노릇을 하게 된 딸 뤼미르는

엄마의 영화 '내 어머니에 대한 추억'의

촬영 현장에 동행하게 됩니다


파비안느의 삶을 그려낸 SF영화에서

파비안느의 역은 신인배우 마농이 맡고

파비안느는 엄마보다 더 늙어가는

딸을 연기를 합니다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나갔다가

몇 년이 지나면 한 번씩 다니러 오는데

시간이 지나도 나이가 들지 않고 그대로인

엄마를 기다리며 나이가 드는 딸을 연기하며

파비안느는 늘 자신을 기다렸을

딸 뤼미르의 마음이 되어봅니다


현실과 전혀 다른 영화 속 엄마와 딸의 모습을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게 된 뤼미르 역시

임시 매니저로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

엄마와 다투고 어긋나며 티격태격하면서도

비로소 엄마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진심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우주로 나갔다가 몇 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나이 들지 않는 엄마 모습을 연기하는

신인 배우 마농을 통해

뤼미르는 엄마의 모습을 보게 되거든요


사라를 닮은 신인배우 마농은 뤼미르에게

엄마의 관심을 바라고 그리워한다고 해요

뤼미르는 배우인 엄마가 아닌

자신의 엄마를 바라고 그리워하는 거죠


어릴 적 뤼미르가 엄마 연기만 따라 했다는

매니저 뤼크의 말에

뤼미르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기억은 믿을 게 못 된다고 뤼크는 말해요

누구에게나 기억의 오류는 있는 거니까요


'네 생각을 멈춘 적이 없어 단 한순간도'

엄마 역을 맡아 연기하는 마농이

딸 역의 파비안느에게 하는 대사인데요

엄마 파비안느는 파비안느대로

나이 들지 않는 엄마를 바라보며

늙어가는 딸의 연기를 하는 동안

조금씩 딸 뤼미르의 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사라에게서 도망치느니 지는 게 낫다고

엄마에게 겁쟁이라고 돌직구를 던지는 딸과

'가끔 사라의 모습이 보이는데

사라가 보이면 이제는 연기가 잘 된다'는 엄마는

영화를 통해 한 걸음씩 서로에게 다가서게 됩니다


영화 촬영의 막바지에서 마농과 파비안느가

젊은 엄마와 나이 든 딸의 모습으로

서로에게 애틋한 마음을 기대는

장면이 감동적입니다


영화 촬영이 다 끝난 후

엄마 파비안느와 뤼미르가 마음을 열고

비로소 서로의 진심을 털어놓으며

깊이 이해하고 화해하는 모습이

영화의 장면보다 더 감동적이죠


딸 뤼미르 몰래 딸의 연극

'오즈의 마법사' 무대에 갔었다고

엄마는 비로소 고백합니다

딸이 어땠냐고 물으면 차마

거짓말로 대답할 수 없어서 몰래 갔다는

엄마는 사라에 대한 마음도 고백하죠

배역 때문에 사라를 싫어한 게 아니라

딸의 마음을 훔쳐간 사라여서 싫었다는

엄마의 얘기를 듣고

그 얘기는 왜 책에 안 썼냐고 딸이 묻자

회고록 2편이 나오게 되면 쓰겠다고

엄마 파비안느는 웃어요


잘 자라는 밤 인사를 나누고

서로를 끌어안는 파비안느와 뤼미르

모녀의 모습이 깊은 여운을 남기는데요

'마법이라도 부린 거냐'고 딸이 울먹입니다

어린아이처럼 엄마품에 안겨

금방 엄마를 용서하게 될 것 같다며

울먹이는 딸에게 파비안느는 말해요


'우린 이제껏 잘 지내왔고 서로를 잘 아니까

마법 따위 필요 없다'고 말하며

화해의 순간에도 엄마는 어김없이

다시 배우로 돌아갑니다


마농과 연기를 한 영화의 엔딩 장면에서

'왜 이런 감정으로 연기하지 못했을까

그 장면을 다시 찍어야겠다'는 엄마를

이제 딸은 웃으며 이해합니다

엄마는 배우니까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손녀에게도

'마법 따위 필요 없이

자신의 손녀이니 당연하다'는

파비안느의 자부심에 웃음도 납니다

천생 배우니까 용서해야죠


딸 뤼미르는 자신의 딸 샤를로트에게

할머니에게 말할 대사를 일려 줍니다

'할머니가 우주선을 타셨으면 좋겠어요

배우가 된 내 모습을 볼 수 있으니'

손녀 샤를로트의 말에 진심으로 기뻐하는

파비안느의 모습이 그녀의 진실인 거죠

샤를로트의 할머니이고 뤼미르의 엄마이면서

여전히 배우 파비안느니까요


그렇습니다 파비안느의 말처럼

'서로 아는데 왜 마법이 필요해?'

가족에게는 마법이 필요 없는 거죠

지지고 볶으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가족은 가족이라서 애증의 실마리 풀어내며

알뜰살뜰 서로를 보듬어 안습니다

가족으로 만난 것이 이미 마법이니까요


파비안느가 가족들과 함께 촬영장으로 가는

봄날 같은 부드러운 풍경으로 영화는 끝이 납니다

엄마와 딸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내면서도

일상을 시처럼 수놓은 장면과 대사들이

문득문득 되살아날 것 같아요


그럼요

누가 뭐래도

그 어떤 경우에도

가족은 기승전~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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