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462 기억의 숲길 꽃길 바닷길
사진으로 떠나는 나들이
어쩌다 우연히 서랍을 뒤적이다가
엄마의 한량무 공연사진을 봅니다
문화센터에서 한국무용을 배우시던 엄마가
갓 쓰고 도포 차려 입고 남장을 하신 모습이
낯설기도 하고 재미나기도 하고
지금보다 훨씬 젊으신 모습에
잠깐 코끝이 찡해집니다
엄마 우리 엄마 한량이셨네~
그때가 울 엄마의 전성기였네~
노래 가사처럼 화려한 시절은 가고
멋들어진 사진 몇 장으로 남아 있다고
중얼거리며 생각합니다
어쩌다 꺼내보는 지난 사진들 속에는
그 시절의 눈부신 반짝임이 고여 있어요
좋은 날 기쁜 순간에 찍어서
고이 남긴 사진이라 그런 거죠
지난 사진 속에는
환하게 눈부신 순간도 많았구나~하고
돌아보며 기억하고 추억할 수 있으니
참 다행이고 고마운 일이라고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
엄마의 한량무 사진을 들여다보는데
또르르 친구님의 톡 문자에
덤으로 제주 사진들이 따라옵니다
봄볕이 비치는 남원 큰엉 경승지 사진입니다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한반도 모양이 신기하고
그 사이로 보이는 연파랑 하늘과
진파랑 바다에 잔잔히 스미는
제주의 봄빛이 아련합니다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그 길 어디쯤에서
지금보다 젊으신 엄마랑 동생들이랑
함께 사진을 찍었던 생각이 나서
기억의 바닷길을 더듬으며
잠시 서성입니다
제주에서는 언덕을 엉이라 부른다죠
큰엉은 큰 언덕의 사투리인 건데
바다를 향해 입을 벌리고 있는 언덕이랍니다
그 언덕을 엄마랑 걸었던 눈부신 날들이
지난 시간 속에 햇살 한 줌으로 꽂혀있어요
가만가만 기억을 더듬어보니
엄마랑 함께 비행기 타고 다녀온
마지막 여행도 제주였어요
그때도 동생들이랑 함께여서 좋았고
그때는 마라도까지 다녀왔으니
더 많이 그윽하게 아름다운 시간이었죠
이제는 연로하신 엄마랑
비행기 여행이 어려워 아쉽지만
기억 속 숲길 꽃길 바닷길을
엄마랑 동생들이랑 함께 걷던
그날의 아름다운 기억을 안고
언제든 마음 나들이가 가능하니
그 또한 다행이고 행복한 일입니다
저기 저 길을 엄마랑 갔었다고
엄마랑 함께 느리게 걸었다고
동생들도 함께여서 든든했다고
두고두고 기억할 순간들이 있어서
고단하고 고달픈 인생길 걷다가도
어느 날 문득 눈물겹게 행복할 것 같아요
사진 한 장이 주는 기쁨이
바로 그런 것이죠
그 순간의 햇살과 바람과 뭉클함이
기억 속 숲길 꽃길 바닷길 어디쯤에
향기롭게 아로새겨져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