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479 민들레의 바람 여행
민들레 홀씨가 아니랍니다
보송보송 동그란 깃털 뭉치 같은
민들레 씨앗이 살며시 고개 숙여
인사하는 거 보셨나요?
나는 봤어요~ 나에게 건네는 인사는 아니고
바로 앞에 있는 씨앗 친구들에게 고개 눅여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인사였지만
고요히 아름다운 모습이었어요
나풀나풀 자유 영혼 민들레가
보송한 씨앗을 살포시 수그리며
이렇게 말을 건네는 듯합니다
곧 바람 여행을 떠날 거라고
이제 떠나면 다시 보지 못하더라도
더 새롭고 넓고 큰 세상 구경도 하고
새 친구들도 만나게 될 테니
두려움 대신 설렘 안고 떠나겠다~며
아쉽더라도 아쉬워하지 말자는 듯
키다리 씨앗이 다정히 고개 숙여
배꼽 인사를 하는 모습이 기특하고
사랑스러워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답니다
씨앗은 훌훌 바람 따라 날아가더라도
함께 한 기억은 바람에 날아가지 않을 거라고
바람에 날려 어디에서 새롭게 시작하든지
지금 이 순간의 눈부심을 잊지 말자고~
바람 따라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
훌훌 씨앗을 퍼뜨리기 전에
조용한 인사를 건네고 있어요
예뻐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붉은 꽃도 예쁘고 수줍은 하얀 꽃도 곱고
빙 둘러앉은 초록 잎들도 싱그러운데
그 사이에 손톱만 한 노랑꽃도 사랑스럽고
민들레 씨앗이 바람 여행을 떠나기 전
친구들과 나누는 소리 없는 꾸벅 인사가
애틋하고 애잔한 만큼 곱고 아름다웠어요
민들레 홀씨라고 흔히들 말하는데요
민들레 홀씨가 아니랍니다
홀씨는 꽃이 피지 않는 고사리와 같은
민꽃식물이 홀씨로 번식을 한답니다
꽃이 없으면 꽃가루가 없으니까요
홀씨가 잘 익었을 때 바람이 불어오면 홀씨주머니가 터지면서 주머니 안의 홀씨들이 바람을 타고 멀리 퍼져나가는 거죠
노랑 저고리 입고 고운 꽃으로 피어나는
만들레는 홀씨가 아니랍니다
꽃이 피니 당연히 홀씨는 없고
열매와 씨앗이 있을 뿐인데
다닥다닥 씨앗에 붙은 은색 깃털을 타고
바람에 날려 멀리 낯선 곳으로
거침없이 바람 여행을 떠나는 거죠
민들레는 꽃 한 송이가 하나의 꽃이 아니라
수많은 꽃들이 모여 이루어진 통꽃이래요
수많은 작은 꽃잎들이 모두 붙어
통으로 된 꽃이 통꽃인데요
꽃의 수만큼 씨앗이 맺혀 영근답니다
호호백발 씨앗들이 동그랗게 부풀어 올랐다가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흐트러지는데요
민들레도 다 같은 민들레가 아니랍니다
요즘 화단이나 길가에 지천으로 피어난
민들레는 대부분 서양 민들레이고
자생 민들레는 시골에 조금 남아 있다는군요
꽃받침이라고 부르는 모인꽃싸개조각이
위를 향하고 그 끝에 삼각형 뿔 달린 것이
우리나라 자생 민들레이고
꽃받침이 위를 향하더라도
뿔이 달리지 않으면 산 민들레라는군요
꽃받침이 아래로 쳐져 있으면
서양 민들레라고 해요
노랑 저고리 입은 민들레는
노아의 홍수 때 물이 가득 차올라
모두 도망을 갈 때 발이 빠지지 않아
도망가지 못하고 거친 물결이 차오르자
파르르 두려움에 떨다가 그만
머리가 하얗게 세어 버렸다는
안타까운 전설이 있어요
가여운 민들레의 간절한 기도를 보듬어
민들레의 씨앗을 바람 따라 날려 보내
양지바른 곳에 피어나게 해 준
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늘을 우러르며 살게 되었다고 하는
민들레의 꽃말인 '감사'와
잘 어울리는 전설입니다
이제 곧 바람 여행을 떠나갈
민들레 씨앗을 향해
감사의 눈인사를 건네며
민들레의 바람 여행을 응원합니다
낯선 곳에 가더라도 외롭다고 울지 마
거기 또 다정한 새 친구들이 있을 테니
마음 붙이고 살면 정이 들 테니~
그리고 우리 모두 바람 여행 중이니
어디선가 우연히 다시 볼 수 있을 거야
우리 서로 알아보지 못하고
낯선 눈길을 나눌지라도
괜찮아~ 한때 주고받은 마음은
기억 속 어딘가에 고이 머물러
반짝이는 순간의 기쁨과 함께 할 테니
힘들어 울고 싶을 때
너와 나 그리고 우리를 다독여 주는
다정한 손길이 되어 줄 거야
지난 시간들은 그냥 지나가지 않고
기억 속에 고운 무늬를 남기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