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482 오래가는 향기

만리향이 피었어요

by eunring

베란다에서 건조대에 빨래를 널다가

잠시 손을 멈추었습니다

길 건너 초등학교 운동장

무성한 느티나무 잎새들이

연두이다가 연초록이더니

이제는 제법 싱그러운 초록입니다


다시 빨래를 널다가 또 한 번 멈추었어요

빨래에서 풍기는 섬유유연제 냄새가

은은하게 향긋해서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세탁기를 돌릴 때 중성세제를 넣을 뿐

섬유유연제를 생략한 지 한참 되었거든요


그러다 만리향 화분을 들여다보았어요

하양 별꽃들이 올망졸망 피어나

부드럽고 은은한 향기를 건네고 있으니

기특하고 애틋하고 사랑스럽습니다


향기로 인사를 건네는 여린 꽃잎들이

만리향이라는 이름에 담긴 희망을 견디기에

너무 작고 애잔해서 안쓰러운 마음으로

빨래 널던 손을 멈추고 한참을 들여다봅니다


앙증맞고 사랑스러운 꽃들에게

만 리까지 멀리 향기를 보내라는 희망은

너무 무거운 숙제라는 생각에 이어

오래 마음에 남을 만큼 귀하고

은은한 향기라는 고운 의미로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어리고 여린 애기별꽃이 품고 있는

향기가 깊고 너그럽고 넉넉해서

기특하고 대견한 마음에

오래 곁에 머무르라는 뜻으로

만리향이라 부른 것일 테죠

귀하고 좋은 것일수록 금방 사리지는 것이

안타까운 마음을 꽃 향기에 얹었나 봅니다


사랑도 우정도 만리향 향기처럼

잔잔하고 그윽하게 오래갔으면 좋겠어요

강하고 화려하고 드센 향기는 한순간이고

부드럽고 조용한 향기가 은은하게

오래 남는 거니까요


향기란 때로 느낌으로 오기도 하죠

좋은 향기는 쓰담쓰담 기분을 달래주고

마음을 평온하게 합니다

향기는 뇌에 가장 빠르게 전달이 되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고 해요


그런데요~

만리향이나 천리향은

멀리까지 가는 기분 좋은

꽃 향기를 이르는 말이지

꽃이나 나무 이름은 아니랍니다


백일 동안 꽃이 핀다는 배롱나무의

은은한 향기를 오리향(五里香)

남쪽 지방에서 자라는 다정큼나무의

이름처럼 다정한 향기를 칠리향(七里香)

난초의 고요하고 그윽한 향기를 십리향(十里香)

발끝에 묻어 백 리를 간다는 백리향(百里香)

서향의 은은하고 감미로운 향기를 천리향(千里香)

돈나무의 부드럽고 그윽한 향기를

만리향(萬里香)이라고 부르는데

향기라 쓰고 희망이라 읽어야 할까요?


곱고 감미로운 꽃내음이

멀리 갈 때까지 오래 남기를 바라는

간절하고 향긋한 희망이

해맑은 오월을 닮았습니다


사랑과 감사의 마음이 넘치는 오월에는

향기로운 희망도 다정한 친구처럼

우리 곁에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백리향 천리향 만리향처럼

발끝에 오래 머무르는 희망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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